[지구촌 돋보기] 우리 좋았잖아…우크라에 등 돌린 동유럽?
[앵커]
지난해 초 러시아 침공 직후부터 물심양면 우크라이나를 돕던 동유럽 국가들이 최근 들어 싸늘합니다.
러시아에 맞선 유럽의 단일 대오에 균열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는데요.
어떤 사연인지, 지구촌 돋보기에서 황경주 기자와 알아봅니다.
우크라이나 이웃 나라에서 농민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면서요?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동유럽, 특히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국가들에서 농산물 가격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지난 7일 루마니아에서는 전국적으로 농민 수천 명이 시위를 벌였습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루마니아 농민들 모습인데요.
'유럽연합은 우리를 무시했다', '책임지고 행동하라' 이런 팻말이 눈에 띕니다.
[루마니아 농민 : "우리는 우크라이나도 농산물을 팔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건 불공평한 경쟁입니다."]
[앵커]
의아한 소식이네요.
전쟁 이후 농산물 가격이 전세계적으로 오른 거 아니었나요?
동유럽은 다른가요?
[기자]
동유럽에선 농산물 가격이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전쟁 전에는 밀을 비롯해서 우크라이나의 농산물이 흑해를 통해 전세계로 수출됐었거든요.
그런데, 전쟁으로 수출길이 막혔고, 유럽연합이 해결사로 나선겁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이 맞닿은 폴란드, 루마니아 등을 통해 육상으로 농산물을 수송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관세 혜택도 주고요.
우크라이나도 돕고, 중동과 아프리카에 식량 공급도 원활히 하겠다는 취지였죠.
그러다 지난해 7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 '흑해곡물협정'이 체결되면서 바닷길이 다시 열렸는데, 이게 동유럽에는 악재가 됐습니다.
공급이 다시 원활해지면서 동유럽으로 수송된 우크라이나 곡물이 다른 나라로 수출되지 못하고 현지에 남아있게 된 거죠.
관세 혜택까지 받은 값싼 우크라이나 농산물이 넘쳐나니, 현지 농업이 직격타를 입었습니다.
[앵커]
결국 몇몇 국가들이 최근 우크라이나 농산물을 일단은 수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기자]
폴란드와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세 나라입니다.
우크라이나산 곡물과 설탕, 과일 등 주요 농산물을 오는 6월까지 수입하지 않기로 한 건데요.
특히 폴란드는 자국을 거쳐서 다른 나라로 가는 물품까지 차단합니다.
폴란드는 올 가을 총선을 앞두고 있어서, 농민들의 불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EU 회원국들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무역 행동을 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앵커]
"러시아의 진짜 목표는 유럽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유럽의 지원을 호소해온 우크라이나로서는 동유럽 국가들의 움직임이 반갑지 않겠어요.
[기자]
"일방적이고 극단적인 조치는 사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우크라이나 농업부가 밝혔습니다.
특히 군사 지원 등 여러 면에서 든든한 우방이었던 폴란드의 태도 전환에 더욱 당황하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유럽연합도 동유럽 국가들을 비판하고 있는데요.
개별 국가의 돌발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며, 이번 결정에 대한 추가 정보를 각국에 요구했습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대변인 : "무역정책은 유럽연합의 독점적인 기능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합니다. 유럽연합 차원에서만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앵커]
그런 와중에 겨우 열렸던 바닷길에선 분위기가 다시 삼엄해지고 있다고요?
[기자]
우크라이나가 지난 17일 자국 곡물 수출선이 통관 검사도 못 받고 해협에 묶여있다며, '흑해곡물협정'이 중단될 위기라고 주장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공동조정센터가 튀르키예 보스포루스 해협에 있는데, 여기서 러시아 측이 우크라이나 배를 막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 러시아는 여차하면 흑해곡물협정을 파기하겠다는 태도를 줄곧 보여왔는데요.
러시아 배도 흑해를 원활히 이용할 수 있도록 협의해 놓고,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우크라이나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앵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한동안은 국제 곡물 가격이 치솟고 아프리카에선 식량난도 심각했잖아요.
또 그런 상황이 반복되는 거 아닐까요?
[기자]
흑해곡물협정이 세계 식량 안보에 필수적인 만큼 협정이 흔들리면 곡물 가격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겁니다.
여기에 동유럽을 통하는 육로가 흑해 수출길을 부분적으로나마 대체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동유럽 국가들 내부 반발 때문에 불안한 상황이 된 거죠.
유럽에서는 러시아에 맞선 단일대오가 무너질 수 있다는 걱정도 나와서, 유럽연합은 해결책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농업·무역 전문가 : "(우크라이나 곡물이) 유럽을 통과하는 문제에 대해 유럽연합이 협상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연합은 지난달 폴란드와 불가리아, 루마니아의 피해 농가에 약 810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는데요.
지원금을 추가로 투입할 수 있을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지구촌 돋보기였습니다.
황경주 기자 (rac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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