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대결과 자원전쟁…‘호구’ 되어가는 대한민국 [홍길용의 화식열전]

2023. 4. 1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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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첨단산업 새 공급망 구축에
中, 원자재시장 反美 연대 주도
韓. 수출·물가·성장위기 동시에
‘從美和中’ 실리외교·경영 절실

중국 춘추시대 정(鄭) 나라에 자산(子産) 이란 명재상이 있었습니다. 공자(孔子)도 깊은 존경을 밝힌 인물입니다. 당시 정나라는 중원의 강국 진(晉)나라와 라이벌인 남방의 대국 초(楚)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진나라에 무시 당하고 초나라에서 협박을 받는 처지였죠. 이에 자산은 ‘진을 따르면서도 초와 친하게 지내는’(從晉和楚) 정책을 절묘하게 구사하며 실리를 얻습니다.

올해 미국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는 차종은 모두 자국 기업 차량이라고 하죠. 사실 현대차 GV60의 탈락은 이미 예상이 됐었습니다. 미국 공장에서 만들지만 배터리가 중국산이기 때문이죠. 그러면 배터리를 미국에서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미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 가운데 가장 까다로운 게 배터리입니다. 부품 50% 이상을 북미에서 생산 또는 조달해야 하고 핵심 광물 40% 이상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채굴 또는 정제해야 합니다. 이 같은 규제는 2027년까지 해마다 10%포인트씩 높아지죠. 4년 후에는 그 비율이 90%, 80%가 됩니다. 미국에서 만들어도 부품이나 재료가 중국산이면 안된다는 뜻입니다. 당장 올해 12월31일부터는 중국 등 ‘해외우려집단’(foreign entities of concern)에서 만든 부품을 사용하는 전기차는 보조금 지원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제품이든 부품이든 만들 수만 있다면 그나마 괜찮습니다. 문제는 만들 수 없는 것, 즉 자원입니다. 부족하면 원가가 높아져 경쟁력이 낮아지죠. 중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제조에 중요한 광물 상당수를 가장 많이 가진 나라입니다. 주요 광물을 정제하고 가공하는 시설도 중국에 몰려 있습니다. 환경 문제로 선진국들이 이를 기피한 결과죠.

미국이 중국이 반도체 등 첨단제품을 확보하지 못하게 막을 때 중국 측이 이에 맞서 동원할 수 있는 비대칭 전력이 바로 자원입니다. 중국은 희토류 수출 규제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對一路)’ 정책으로 일찌감치 중앙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높여왔습니다. 최근 콩고공화국등 아프리카에서 전기차 배터리 관련 자원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죠. 누가 봐도 자원전쟁에 대비하는 모습 아닌가요.

사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석유수출기구 플러스(OPEC+)’가 감산에 나선 것도 미국과 중국의 자원전쟁 연장선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가까운 사이인 것은 너무 많이 알려진 사실이죠. 사우디의 실질적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태자가 미국과 껄끄러운 사이인 것도 많이 알죠. 최근 중국은 이슬람 세계의 앙숙인 사우디와 이란을 화해시켰습니다. 중동에서도 이란은 반미(反美)의 선봉에 선 나라죠. 최근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는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해 이를 되팔아 큰 돈을 벌고 있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 등 서방의 제재로 경제에 어려움을 겪는 러시아를 사실상 돕는 행위입니다. 중국은 최근 남미 최대 산유국인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도 초청해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은 어딜까요. 지난해 기준 일평균 1048만 배럴을 생산한 사우디일까요? 아닙니다. 하루평균 1921만 배럴을 뽑아낸 미국입니다. 북미에서 혈암유(頁巖油, shaleoil)가 개발되면서 원유시장의 판도가 바뀐 결과죠. 세계 원유 생산량 가운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인 미국·캐나다·노르웨이·영국·덴마크의 비중은 30%에 육박합니다. OPEC과 비슷하죠. 러시아 등이 포함된 OPEC+는 약 44%입니다. 중국이 4%가 넘으니 미국과 가깝지 않은 나라들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세계 최대 원유 수요국 역시 미국입니다. 지난해 일평균 2043만 배럴을 썼죠. 2위는 1485만 배럴인 중국입니다. 미국은 거의 원유 자급이 가능하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OPEC 입장에서도 이제 미국 보다 중국이 더 큰 고객입니다.

이후 OPEC은 4월 보고서에서 올해 글로벌 원유 수요를 일평균 1억189만 배럴로 예상했습니다. 지난해(1억1만 배럴) 보다 188만 배럴이 늘어난 수치입니다. 코로나19 방역봉쇄에서 벗어난 중국이 하루 76만 배럴을 더 쓸 것으로 관측했습니다. OPEC의 지난해 일평균 생산량은 2890만 배럴입니다. 사우디가 감산을 결정한 만큼 올해 OPECE 생산이 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4월 보고서에서 올해 글로벌 원유 수요를 일평균 1억190만 배럴로 추산했습니다. OPEC 수치와 거의 같죠. IEA는 올해 OPEC+가 140만 배럴 정도 줄일 것으로 봤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유국들이 100만 배럴 정도를 늘릴 것을 예상했습니다. 그래도 40만 배럴이 부족하네요.

OPEC+가 최대 고객인 중국에는 원유를 충분히 공급할 것으로 보입니다. 생산보다 수요가 더 많은 OECD 국가들이 원유 부족에 시달릴 가능성이 큽니다. 공급이 부족하면 비축한 물량을 쓸 수 밖에 없습니다. IEA 추산 OECD 재고는 올 1월 말 28억3000만 배럴로 5년 평균치 보다 불과 4700만배럴 낮은 수준입니다. 2021년에 급감했던 재고를 지난 해 꽤 많이 늘렸습니다. 전년대비 2022년 생산량 증가분을 보면 OPEC이 226만 배럴, OECD가 114만 배럴, 비(非) OECD가 60만 배럴 순입니다. OPEC+ 입장에서는 2022년에 생산을 늘렸더니 OECD만 싼 값에 비축 량을 늘렸다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런 점에서 이번 감산은 상당히 전략적이라고 봐야합니다. 싼 값에 잔뜩 늘어난 비축 물량이 어느 정도 소진돼야 유가를 끌어올리기 쉽지 않을까요?

1971년 1차 석유파동(Oil shock) 때도 OPEC은 석유 수출을 아예 중단하지는 않았습니다. 감산만 했죠. 아예 공급을 끊으면 북미와 북해 유전들이 항구적인 증산을 해서 OPEC으로서는 고객을 잃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중동 산유국들은 경제개발을 위해, 러시아는 전쟁 수행을 위해 돈이 절실합니다. OPEC+가 바라는 것은 높은 수준의 유가가 계속 유지되는 것입니다. 최근 IEA가 OPEC+ 감산으로 전세계 물가가 불안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 이유입니다. 물가가 오르면 금리는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합니다. 경제에는 부담이죠.

글로벌 원자재는 달러로 거래됩니다. 달러가 강해지면 다른 통화들은 약해져서 원자재를 수입해야 하는 나라는 물가 부담이 커집니다. 연방준비제도(Fed)가 긴축을 멈추고 기준금리를 내리는 방향전환(pivot)을 할 가능성은 상당기간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미국 경제를보면 중앙은행은 긴축을 하는데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반도체와 전기차 등의 국내외 투자가 이어지며 시중에는 자금이 공급되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가 계속 높은 온도를 유지하면 달러 강세도 지속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집니다.

보통 유가 상승은 경기 개선을 의미하죠. 경기가 좋으면 에너지 수요도 늘어납니다. 글로벌 경기가 좋으면 우리 경제는 수출이 늘어 무역흑자가 증가하죠. 원화가치 상승 요인입니다. 과거에도 유가가 오르면 흑자가 늘고 환율이 하락해 물가부담이 상쇄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핵심에는 중국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글로벌 경기는 썩 좋지 않고 수출도 부진해 원화가치도 추락하고 있습니다. 유가, 물가, 금리는 오르고(3高)와 원화가치, 생산효율, 경제성장은 낮아지는 3低)가 겹친 보기 드문 상황입니다.

미국의 중력이 강해지며 중국과의 경제 고리는 위태롭게 됐습니다. 중국은 미국에 이은 세계 최대 소비 시장입니다. 중국 없이 과연 우리나라가 지금의 경제규모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경상수지 적자로 달러 공급이 줄면 원화가치가 하락하고 수입물가가 상승합니다. 물가가 상승하면 금리를 올려야 합니다. 금리가 높아지면 부채 부담이 커지면서 민간 경제가 위축됩니다. 자원전쟁까지 겹치면 물가 뿐 아니라 수출 경쟁력까지 치명상을 입을지 모릅니다.

호구(虎口)는 ‘범의 아가리’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처지나 형편’이나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처지와 꽤 어울리는 단어로 생각됩니다.

지난 해 8월 미국이 반도체법(The Chips Act)과 IRA를 시행한 이후 기업들이 밝힌 투자계획 규모는 약 4000억 달러로 추산됩니다. 해외에서 가운데 가장 많은 투자를 약속한 나라가 대만과 한국입니다. 기업들 입장에서야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투자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기업들이 이렇게 돈을 많이 쓰는데 대신 얻어낼 것도 있어야겠죠. 한미 정상회담과 G7 회의가 잇따라 열릴 예정입니다. 호구(虎口)는 피할 수 있는 성과가 나왔으면 합니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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