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부터 생각” KBO 42년 철옹성 역사…36세 좌완, 그땐 마네킹이었다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3회부터 생각했어요.”
삼성 좌완 백정현(36)은 솔직했다. 18일 고척 키움전서 8회 1사까지 퍼펙트 피칭을 하다 아웃카운트 5개를 남기고 에디슨 러셀에게 유격수 방면 내야안타를 맞으며 고배를 마셨다. 이후 9회에 연속 장타를 맞으며 완투완봉승까지 놓쳤다.
8이닝 3피안타 6탈삼진 2실점. 단연 압권의 투구였다. 그러나 사람인 이상, KBO에서 42년간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대기록의 첫 번째 주인공이 되지 못한 게 아쉽지 않을까. 백정현은 경기 후 “3회부터 생각했다”라고 했다. 퍼펙트 게임을 의식하면서 8회 1사까지 버텼다는 의미.
이날 백정현은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의 제구, 커맨드가 7회까지 완벽했다. 그러나 내적으로 이런 저런 감정이 교차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꿈이 퍼펙트게임이었다. 실투도 있었고 안타가 될 타구도 있었는데 잡히더라. 운이 따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뒤로 갈수록 힘들더라”고 했다.
결과론이지만, 러셀의 강습 타구에 글러브를 대지 않았다면 유격수 이재현이 쉽게 처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백정현은 “타구가 눈 앞에 보였고, 잡으려고 했다. 체인지업으로 범타를 유도하려고 했는데 후회는 없다. 안타를 맞은 뒤 다음타자를 잡자는 생각이었다”라고 했다.
투수는 누구나 퍼펙트게임, 노히트노런의 주인공이 되는 생각을 한번씩은 한다. 백정현에겐 어색하지 않은 날이었고, 차분하게 7회까지 이어가다 8회에 결국 고비를 못 넘겼다. “꿈에서 깬 느낌”이라고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겠다”라고도 했다. 냉정한 마인드다.
다만, 주위에서 의식했던 건 사실이다. 실제 러셀의 타구가 안타가 되자 덕아웃의 원태인이 머리를 감싸 쥐며 함께 아쉬워했고, 데이비드 뷰캐넌은 조용히 백정현에게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백정현은 웃으며 “5회를 지나니 갑자기 말도 안 걸고 없는 사람 대하듯이 하더라”고 했다. 외로운 마네킹이 됐지만, 그 순간 삼성 덕아웃은 한 마음 한 뜻이었다.
비록 KBO리그 역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백정현에겐 터닝포인트가 된 하루다. 작년의 지독한 불운, 올 시즌 첫 2경기서의 부진을 씻고 새 출발했다. 그는 “그동안 위기의 순간을 돌아보기도 했고 나름대로 연구도 했다. 변화도 줬다”라고 했다.
이를테면, 백정현은 체인지업이 간파 당했다고 생각하자 잠시 봉인한 기간이 있었다. 이날은 체인지업, 슬라이더를 고루 섞었다. 그는 “타자들이 체인지업을 생각하고 들어오는 느낌이 있었다. 슬라이더를 쓰다가 (강)민호 형이 이번엔 체인지업을 써보자고 했다. 결국 제구다. 안우진(키움)이나 문동주(한화)도 공이 빨라서 좋은 것보다 코스에 변화구를 예리하게 넣으니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다”라고 했다.
생각을 바꾸고, 결과를 통해 변화를 확신하고, 자신감을 가지는 선순환의 고리에 들어선 것일까. 백정현의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백정현.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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