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팅과 커피 사이[편집실에서]
즐겨찾는 빵집이 있습니다. 그 집의 특징은 “커팅해드릴까요” 하고 꼭 물어본다는 점입니다. 그럴 때마다 “예” 하고 응답하곤 합니다. 낯선 곳에 가면 어느 빵집을 선택할지 망설여지죠. 외양만 보고 들어갔다가 입맛 버리고 기분까지 망치는 수가 있으니까요. 그날은 운이 좋았습니다. 단골 빵집 브랜드를 발견했습니다. 지점이었던 겁니다. 일정 수준의 맛은 보장하리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정성껏 고른 빵을 계산대 위에 올려놨습니다. “커피 드릴까요?”
이상했습니다. 이 매장에선 빵을 사면 커피를 서비스로 주는 걸까,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무료인가요?” 그렇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습니다. 고물가 탓에 식당들이 자판기 커피 무료 제공 서비스마저 줄여가는 시대 아닙니까. “커피를 공짜로 주신다고요?”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아니요. 빵을 잘라드린다고요. 커팅이요, 커팅” 그도 웃고 저도 웃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이번엔 편의점입니다. 신제품이 흥행몰이 중이라길래 들렀습니다. 제품을 집어들고선 계산대로 향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로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사라졌지만, 그 편의점 직원은 마스크를 꾹 눌러쓴 상태였습니다. “안녕하세요”에 이어 “이거 주세요”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4500원입니다”라는 무뚝뚝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직원이 웅얼거리며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잘 안 들렸습니다. 앞서 빵집처럼 다시 물어보는 게 맞지만 빨리 볼일을 마치고 나가야겠다 생각했던 걸까요,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영혼 없이 카드만 내밀었습니다.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그 직원이 제품을 예쁜 비닐봉지에 담아주는 것 아닙니까. 무표정한 얼굴의 그가 이런 친절을 베풀다니, 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습니다. 뒷사람이 기다리길래 서둘러 편의점을 나왔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주머니 속에서 영수증을 꺼내봤습니다. 봉툿값 100원이 떡하니 찍혀 있더군요.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됐습니다. 아까 못 들은 말은 “봉투에 담아드릴까요?”였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그 짧은 순간에도 유쾌와 불쾌 사이를 왔다 갔다 했던 감정의 기복과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나름 속으로 벌였던 둘의 신경전 상황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습니다.
이쯤 되면 같이 있어도 딴 세상을 사는 거지요? 벌써부터 이렇게 잘 안 들리는데, 나이가 들어 청력마저 떨어지면 그때는 정말로 어떡하나 싶어 잠시 상념에 빠져들었습니다. 각종 매장에서 하루가 다르게 키오스크(무인정보단말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얼굴 볼 일이 없으니 오해할 일도 없고, 그저 편리하고 좋기만 할까요. 송진식 기자가 이번 호에 쓴 ‘키오스크 급증…장애인·노인은 가슴만 칩니다’ 제목의 기사를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네요. 키오스크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를 되뇌는 이용자들이 제법 된다고 합니다. 마주 봐도 걱정, 마주치지 않아도 걱정입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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