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 '어쩔 수 없었음'과 '어쩔 수 있음'에 대한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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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한 시는 '왜놈들이 판치'던 때에 '남이'라는 소녀와 그녀의 '엄니'가 당했던 이야기를 형상화한 작품이자, 실화이다.
일제강점기인 1943년 마산시 '진동마을'에 살다 위안부로 캄보디아까지 끌려갔다 일제의 패망 후 그대로 버려져 그곳에서 50년 넘게 살아야 했던, 그러다 1997년 10월 6일에야 비로서 우리나라 국적이 회복된 일명 '훈(캄보디아 이름)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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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놈들이 판치는 세상에/ 어느날 갑자기/ 둘째 딸 남이가 없어졌어…/ 왜놈들이 열다섯 살 남이를/ 잡아간 게야…// 개 끌려가듯/ 잡혀간 남이는/ 엄니를 부르며 울부짖었지만/ 어쩔 수 없었어…/ 여자 몸으로…// 남이가 왜놈에게 끌려가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엄니는/ 그만 기절하여/ 진동마을 뒷동산/ 뻐꾹새로 남아/ 뻐꾹 뻐꾹 울다가/ 메아리가 되었지.// 동네 사람들도/ 나라 사람들도/ 어쩔 수 없었어…"
- 안상교, 「남이의 불행 시작」 중에서(『정신대 아리랑』, 한민족, 1997)
인용한 시는 '왜놈들이 판치'던 때에 '남이'라는 소녀와 그녀의 '엄니'가 당했던 이야기를 형상화한 작품이자, 실화이다. 일제강점기인 1943년 마산시 '진동마을'에 살다 위안부로 캄보디아까지 끌려갔다 일제의 패망 후 그대로 버려져 그곳에서 50년 넘게 살아야 했던, 그러다 1997년 10월 6일에야 비로서 우리나라 국적이 회복된 일명 '훈(캄보디아 이름)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더 정확하게는 우리나라 언론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게 되는, 또 이를 공론화하는 계기를 마련한 고 '이남이'(한국 이름)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힘없는 나라의 백성이어서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했던, 그로 인해 54년간 조국과 단절되어 가족도, 모국어도 다 잊어버렸으나 고향에 대한 기억과 「아리랑」 가락만은 잊지 않았다던 할머니의 사연은 많은 이들을 눈물짓게 했다. 한편 그녀를 향한 당시 일본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는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위안부와 관련된 오래된, 그런데 너무나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는 기억 하나가 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고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고백이 있었던 1991년 8월 14일 직후에 첫 방영된 「여명의 눈동자」(1991.10-1992.2)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 즉, 과거를 회상하며 독백처럼 처리된 대사이기는 하지만 위안부로 끌려간 딸을 둔 아버지가 그 딸이 창피해서 살아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고 말하는 장면, 살아서 돌아왔으나 병들어 죽어가는 딸에게 "어째서 더 일찍 죽지 않았느냐"고 책망했다며 울부짖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비록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 '어쩔 수 없'이 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이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했던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해방 직후의 위안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범죄를 당한 사람은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 불쾌하고 분노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러한 정당한 감정을 묵살하려는 망각적인 움직임들이 과거에 있었고, 또 현재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이는 분명 심각한 문제다. 더 나아가 이제는 '어쩔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엉뚱한 핑계를 또 대는 것은 비굴하고 무책임하다.
'어쩔 수 없었음'에도, 또 반대로 우리가 '어쩔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망각하여 위안부 피해자들이 다시 시의 장면처럼 '울부짓'는 일이 반복돼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나라 사람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출전이 분명하지 않아 인용하기 조심스럽기는 하나 오래전에 우연히 읽었던, 기억 속에 위안부 할머니의 수기 중 일부로 자리하고 있는 다음의 문장들로 마침표를 대신하고자 한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조선에 태어날 것이다. 다시 조선에 태어날 수 있다면 남자로 태어나 군인이 될 것이다. 군인이 되면 조선의 여자들을 꼭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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