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 글로벌] 4%대 고금리 저축상품 낸 애플, 미국 금융가 '메기 효과' 낼까

박준호 기자 2023. 4. 1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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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출금 수수료, 최소 예치금액 등
기존 예·적금 상품 요구사항 없어
애플, 금융업 핵심 모두 진출한 셈
美 주요 은행은 예금 감소 '설상가상'
1분기 3곳서만 572억弗 이탈해
모건스탠리 "신용경색 이미 시작돼"
[서울경제]

17일(현지 시간) 미국 금융가에 두 가지 소식이 교차했다. 하나는 애플이 골드만삭스와 손잡고 출시한 연 이율 4.15%의 저축 상품이었고, 다른 하나는 찰스슈와브 등 미국 금융회사 3곳에서 올 1분기 예금이 총 572억 달러 감소했다는 소식이었다. 애플이 고유 브랜드 파워와 막대한 현금 보유량은 물론 상품의 높은 이율, 편리한 서비스 등의 특징을 내세워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이후 중소형 은행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미국 금융 소비자들을 파고들 것이라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온다. 금융 서비스 분야에서 판을 흔드는 일종의 ‘메기 효과’를 낼지 미국 금융 업계 안팎이 예의 주시하고 있다.

팀 쿡(오른쪽)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18일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애플스토어 인도 1호점 개점 행사에서 구형 애플 컴퓨터를 들고 온 한 참석자를 환영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애플은 이날 공식 블로그에 글을 올려 애플 카드 저축 계좌를 출시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골드만삭스와 협력해 저축 계좌를 내놓을 예정이라고 발표한 지 6개월 만이다. 제니퍼 베일리 애플 부사장은 상품 출시를 알리며 “우리는 이용자들이 금융 생활을 더 건강하게 영위할 수 있게 돕는 도구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애플이 제시한 연 이율 4.15%는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집계한 미 전역 은행 금리 평균치인 0.37%의 10배가 넘는다. 앨리뱅크와 골드만삭스 계열인 마커스가 내놓은 인기 상품의 이율도 각각 3.75%, 3.9%인 점을 고려할 때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게다가 입출금 수수료, 최소 예치 금액 등 타 은행들이 내거는 최소한의 요구 사항도 없다. 계좌를 만들고 나면 애플 카드로 결제한 금액의 최대 3%를 캐시백 형태로 돌려주는 ‘데일리 캐시’ 혜택도 있다. 계좌 개설과 관리 모두 아이폰 ‘월렛’ 애플리케이션으로 손쉽게 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장점이다. 테드 로스먼 뱅크레이트 선임애널리스트는 “이번 저축 상품의 출시로 애플의 금융 서비스가 탄력을 받게 됐다”며 “애플은 가장 높은 우선순위에 있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은 앞서 지난달 ‘선구매 후지불(BNPL)’ 서비스인 ‘애플페이 레이터’를 출시하면서 이용자들의 신용도를 자체적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심사와 승인을 100% 자회사인 ‘애플 파이낸싱 유한책임회사(LLC)’에서 맡도록 해 단기 대출 업무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여기에 저축 상품까지 출시하면서 금융업의 핵심인 수신(예금)과 여신(대출) 업무에 모두 진출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통 은행에 대한 새로운 위협 신호”라고 전했다. 애플이 보유한 막대한 현금과 브랜드 파워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밍 마 컬럼비아대 교수는 “이번 애플의 저축 상품 출시에서 가장 특별한 부분은 주체가 애플이라는 점”이라며 “누구나 애플을 알고 있고 상당수는 이미 애플 카드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행인이 17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코르테마데라에 위치한 찰스슈와브 점포 앞을 지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블룸버그통신은 애플의 이런 움직임이 다른 금융회사에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SVB 사태 이후 미국 내 대다수 은행에서 예금액이 감소했다. 미국의 10위 금융회사인 찰스슈와브는 1분기 말 기준 예금액이 3257억 달러로 지난해 말(3667억 달러)보다 410억 달러(11%) 줄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감소 폭은 30%에 이른다. 찰스슈와브는 1분기에 순이익은 16억 달러로 전년 대비 15% 늘었지만 예금 유출은 막지 못했다. 찰스슈와브는 지난해 말 기준 장부상 채권 손실이 약 280억 달러에 이르러 SVB 사태 발발 이후 뱅크런 우려가 큰 곳으로 꼽혔다.

자산 규모 12위 은행인 스테이트스트리트 역시 이날 1분기 예금액(2240억 달러)이 전 분기 대비 118억 달러(5%), 전년 대비 11% 감소했다고 밝혔다. 스테이트스트리트는 주요 20개국(G20)이 선정한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글로벌 은행(G-SIBs)’ 30곳 중 한 곳이다. 이 은행은 특히 2분기에도 무이자 예금 40억~50억 달러가 추가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투자자에게 미리 밝혔다. 이 밖에 M&T은행은 예금 잔액이 1분기 1591억 달러로 전 분기 말보다 44억 달러(3%) 줄었다고 전했다. 이날 실적을 발표한 3곳의 금융기관에서 1분기 동안 빠져나간 예금액은 572억 달러에 이른다.

이 같은 흐름에 비춰 앞서 예금이 늘었다고 밝혔던 JP모건·웰스파고·씨티그룹 등 톱5 은행을 빼면 대다수가 SVB 사태 이후 예금 유출을 겪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FT는 “분기 실적과 함께 발표되는 예금 추이는 지난달 은행 사태 이후 금융기관들의 피해에 대한 완전한 그림을 제공하고 있다”며 “지난달 예금이 빠져나간 속도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례가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예금 감소가 신용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마이크 윌슨 모건스탠리 최고주식전략가는 “각종 데이터를 보면 신용 경색은 이미 시작됐다”며 “SVB 사태 이후 최근 지표가 안정된다고 해서 이를 괜찮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진단했다.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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