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파행' 최저임금 심의…'산 넘어 산' 난항 예고
기사내용 요약
최임위, 전날 제1차 전원회의 개최 예정이었으나
"권순원 사퇴하라" 노동계에 공익위원 전원 불참
향후 일정 안갯속…'인상률에 차등적용' 쟁점 험로
[서울=뉴시스] 강지은 기자 =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기 위한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논의가 시작부터 파행을 겪으면서 올해 최저임금 심의는 그 어느 때보다 난항이 예상된다.
특히 노동계의 공익위원 사퇴 촉구로 향후 일정은 사실상 '안갯속'인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률과 업종별 차등적용 여부 등 넘어야 할 쟁점도 만만치 않아 심의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9일 최저임금 심의·의결 기구인 최임위에 따르면 최임위는 전날 오후 3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위한 제1차 전원회의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시작도 못한 채 1시간 만에 파행됐다.
노동계가 최임위 시작에 앞서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을 비롯한 공익위원들이 모두 회의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최임위는 근로자위원·사용자위원·공익위원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근로자위원은 양대노총, 사용자위원은 경영계, 공익위원은 정부가 추천한다.
노동계는 노사 대립 구도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공익위원들이 2년 연속 최저임금 결정 기준을 무시한 채 근거도 없는 산출식을 적용해 공익위원 안(案)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했으며, 그 중심에 권 교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권 교수는 '주 최대 69시간'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의 밑그림을 그린 전문가 논의 기구 '미래노동시장 연구회'의 좌장을 맡기도 했다. 정부 입맛에 맞는 인사가 최저임금을 마음대로 결정하도록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근로자위원 외 양대노총 조합원 수십 명은 회의장에 들어와 손팻말을 들고 "독립성, 공정성 훼손하는 권순원 공익위원은 사퇴하라" "69시간 노동 강요하는 권순원 공익위원은 사퇴하라"고 외쳤다.
노동계 구호가 계속되자 최임위 관계자는 "원활한 회의 진행을 위해 관계자가 아닌 분들은 자리를 정돈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양대노총 조합원들은 거세게 항의했고, 공익위원 불참 속에 회의는 30분 넘게 지연됐다.
그러자 근로자위원들은 "앞으로 15분 내에 위원장이 개회를 선언하지 않으면 퇴장하겠다"고 선언했고, 결국 3시50분까지 공익위원들이 참석하지 않자 근로자위원들은 강한 유감을 밝힌 뒤 전원 퇴장했다.
근로자위원 간사인 류기섭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위원장이 노동자들의 의사전달 기회조차 박탈하고, 직무를 유기했다"며 "회의를 열지 않은 데 대해 엄정 항의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근로자위원인 박희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오늘 보여준 행태로 최임위에 대한 노동자들의 신뢰는 또 한 번 무너졌다"며 "차기 전원회의에서 위원장에게 이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다만 향후 최임위 일정은 미지수다.
최임위 사무국은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이날 열리지 못한) 제1차 전원회의는 빠른 시일 내에 세종에서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노·사·공 합의로 일정을 잡아야 하는 만큼 현 상황에선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동계가 계속 권 교수의 사퇴를 강력하게 촉구하고, 어렵게 잡힌 차기 회의에서도 장내 시위를 이어갈 경우 최임위는 또다시 파행될 수 있다.
시작부터 난항을 겪으면서 본격적인 심의 안건인 최저임금 인상률과 업종별 차등적용 여부를 놓고도 험로가 예상된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의 최대 관심사는 사상 처음으로 '1만원'을 넘을 수 있을지 여부다. 올해 적용 중인 최저임금은 시간당 9620원으로, 인상률이 3.95%(380원) 이상이면 1만원을 돌파하게 된다.
적용연도 기준 최근 5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은 2019년 8350원(10.9%)→2020년 8590원(2.9%)→2021년 8720원(1.5%)→2022년 9160원(5.1%)→2023년 9620원(5.0%)이었다.
노동계는 일찌감치 내년 최저임금 공동 요구안으로 1만2000원을 제시한 상태다. 이는 올해보다 24.7% 높은 수준이다. 물가 폭등으로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아직 요구안을 발표하지 않은 경영계는 경기 침체와 소상공인 지급능력 등을 들며 최소 '동결'을 주장할 것으로 보여 노동계와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업종별 차등적용 여부는 올해 또다시 최저임금 심의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업종별 차등적용 사례는 최저임금 도입 첫 해인 1988년뿐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그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지난해 심의에서 쟁점으로 떠올랐다가 부결됐는데, 최근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면서 다시 도마에 오를 수 있다.
노동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첫날부터 회의가 파행된 적은 없었던 만큼 올해 최저임금 심의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인상률과 차등적용 논의까지 맞물리면 노사가 본격적으로 격돌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임위는 심의 요청을 받은 날부터 90일 이내(6월말)에 최저임금 수준을 의결해 고용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최저임금 고시 시한은 매년 8월5일로, 이의제기 절차 등을 감안하면 늦어도 7월 중순까지는 심의를 마쳐야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kkangzi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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