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앗아간 ‘전세사기’ 빌라, 정부가 은행의 ‘경매’ 막을 수 있을까
은행들 중단 가능한지 놓고 논란
법조계 “민간에 강제하긴 어려워”
정부가 은행 채권 사들이는 방법도
지난 18일 오후 7시 30분. 경인선 인천 주안역 남측광장에 100여 명의 사람이 모였다.
‘전세사기 피해자’라는 공통점이 없었다면 평생 일면식도 없었을 사람들은 이날 3명의 사망자를 추모했다. 당초 지난 2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전세사기 피해자 A씨(38)의 49제를 위해 마련한 추모제는 고 C씨(26), 고 D씨(31)의 사망을 애도하는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합동추모제’로 바뀌었다.
세상을 떠난 세 명의 공통점은 현재 살고 있는 빌라가 경매로 넘어가면 보증금을 단 한 푼도 건질 수 없는 세입자였다는 점이다.
정부는 그동안 전세피해자 지원대책으로 저리대출상품 제공, 긴급주거지원 등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같은 방안은 임시방편일 뿐 이들의 유일한 재산인 보증금을 온전히 되돌려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절망에 빠진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18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으로부터 근저당권이 설정된 전세사기 집의 경매를 중지하거나 일정을 유예하는 대책을 보고받은 뒤 재가했다. 첫 사망자가 나온지 정확히 49일만이다.
앞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인천 미추홀구에서 캠코가 관리하는 주택들에 대해 경매절차 연기신청을 했다. 캠코에 따르면 캠코 인천지역본부는 미추홀구 소재 주택 210건 중 51건에 대해 법원에 매각기일변경을 신청했다. 3월과 4월 각 37건, 14건씩이다. 다만 51건 전체가 전세사기와 관련된 경매는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 이후 금감원 등 금융감독기관은 민간(시중 은행)이 진행 중인 경매절차에 대해서도 기일변경을 통해 경매절차를 연기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의 “경공매 중단”요청, 은행도 따를까
문제는 민간이 채권확보를 위해 신청한 경매건까지 정부가 개입해 연기 및 중지를 요구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공공기관인 캠코와 달리 금융기관이 경매를 포기하면 자칫 배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경매를 포기할 경우 은행에 경제적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은행이 경매를 포기하면서 발생한 손해를 보전하기 위해 전세대출요건을 강화하거나 대출금리를 올릴 경우 또다른 대출자에게 피해가 전가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도권의 현직 부장판사는 “캠코가 공매처리하는 것들은 대표적으로 체납세금이 원인인 경우가 많은데 국가정책상 세금추징을 하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면서도 “은행의 경우에는 경매를 포기할 경우 자금경색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권고는 할 수 있겠지만 강요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매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전직 부장판사는 “정부가 은행의 경매를 중단하게 하는 것은 사적자치의 원칙을 위배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걸림돌이 많다”고 지적했다. 다만 “은행의 채권을 공공기관의 자금을 동원해 대위변제(대신 갚아줌)하는 방법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즉 은행이 경공매로 넘긴 빌라에 설정된 근저당권이나 체납세금을 국가 또는 공공기관이 대신 갚아주고 은행의 채권을 국가가 인수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가가 채권자 신분을 획득한 뒤 경매를 통해 얻은 낙찰금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하거나, 직접 사들이는 방식 등도 해결책으로 거론된다.
전 부장판사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정책의 허점으로 본인의 과실없이 범죄 피해자가 된 사람들인 만큼 국가 예산으로 범죄 피해자를 구제하겠다는 것은 결국 정부의 정책적 결단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종보 변호사(휴먼 법률사무소)는 “정부가 (은행에) 대위변제를 해주고, 채권을 양수해가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다만 “정부가 채권을 양수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구제해줬을 경우 또다른 범죄피해자들도 ‘우리도 구제해달라’고 할 수 있다는 게 문제”라며 “그러나 현재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과도 같기 때문에 특수한 상황으로 판단하고 구제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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