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두의 꼬치 COACH] “감독이 된 그날, 날아갈 듯이 기뻤어요” 연세대 윤호진 감독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어떻게 농구를 시작하게 됐나요?
집안이 농구 집안이에요. 할아버지가 고려대 출신이시고, 아버지는 고3 때 청소년 대표팀에 뽑힌 적도 있으세요. 큰 아버지 딸, 고모 아들, 고모 딸 등 친척 중에서도 농구한 분들이 많죠. 그래서 어릴 때부터 집에서 농구만 보며 자랐어요. 농구장이 제 놀이터이기도 했고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농구를 하고 싶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는데 키가 작다고 반대를 하셨어요. 140cm 정도밖에 안 됐거든요. 다행히 중학교 올라가면서 키가 컸고, 중3 때 1년 유급하면서 농구를 시작하게 됐죠.
단대부고 시절 유망주로 평가받았는데 어떤 선수였나요?
그 때는 멋도 모르고 농구했죠. 제가 제일 잘하는 줄 알았으니까요. 공을 잡으면 무조건 일대일 공격을 했어요. 부모님이 좋은 몸을 물려주셔서 탄력이 다른 선수들보다 좋았거든요. 이 때 저만의 스킬을 연마했어야 됐는데 농구가 너무 쉬우니까 안주했던 것 같아요.
연세대 진학 후에는 선후배들과의 경쟁에서 밀려 벤치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마음고생 많이 했어요. 운이 없었던 게 그 당시 팀에 파워포워드가 없어서 상대적으로 신장이 작은 제가 골밑을 지켰거든요. 근데 구력도 부족하니까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서 준비했어야 됐는데 소홀하다보니 남들보다 떨어졌죠. 중간에 농구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어요.
3학년 때 1년 휴학을 했는데 어떤 이유인가요?
연세대가 미국 하와이에 있는 브리검영대학과 자매 결연을 맺었어요. 그래서 서로 교류가 많았죠. 2학년 말에 하와이 전지훈련을 갔는데 당시 팀에 김동우, 박광재, 전병석, 방성윤, 최승태 등 쟁쟁한 선수들이 많았어요. 경쟁에서 밀리다보니 그 자리를 회피하고 싶었고, 공부도 하고 싶었어요. 또 영어를 할 줄 알면 통역, 스카우트, 에이전트 등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브리검영대학 코치와 선수들에게 물어봐서 유학을 가려고 준비했어요. 근데 학점이 부족해서 가지 못했죠.
2003년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5순위로 안양 SBS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3학년 2학기에 최희암 감독님이 프로로 가시면서 김남기 코치님이 감독이 되셨어요. 김남기 감독님께서 저한테 다시 농구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셨죠. 이후 열심히 노력해서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는데 운 좋게 지명을 받았어요. 지명 순위에 대한 아쉬움은 없어요. 프로까지 갔으니까 다시 한번 열심히 해보자는 동기부여가 생기더라고요.
너무 아쉬웠죠. 프로는 대학 무대보다 더 큰 무대고 치열한데 저만의 무기를 만들지 못했어요. 사실 그 때만 해도 선수들이 몸 관리에 대한 인식이 무지했거든요. 그래서 많이 놀러 다니기도 했죠. 그래도 정말 열심히 했어요. 더 노력했어야 했는데 저 스스로가 만족을 한 것 같아요. 위에는 쟁쟁한 선배들이 있고, 밑에서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다보니 계약 기간 1년을 남겨두고 은퇴하게 됐죠.
“지도자요? 엄두도 못 냈었죠”
윤호진 감독은 짧은 선수 생활을 뒤로하고 베이커리 카페를 차리며 사업가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서 농구는 뗄 수 없는 존재와 같았다. 2007년 친정팀 KT&G의 매니저로 합류했고, 2011-2012시즌 KGC의 창단 첫 우승을 함께 했다. 2014년 하와이에서 요식업을 하며 다시 사업가로 돌아갔지만 2017년 연세대 코치로 부임하며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은퇴 후에는 무엇을 하며 지냈나요?
사실 은퇴할 때 팀에서 저를 좋게 봐주셨는지 프런트 쪽에서 일할 생각 없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 때는 ‘계약 기간 1년이 남았는데 은퇴시킨 팀에서 왜 일을 해야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거절하고 생전 처음으로 미국 여행을 갔어요. 이때 사업에 관심을 가졌죠. 그리고 돌아와서 분당에 베이커리 카페를 오픈했어요. 일 매출 전국 1위도 몇 번 해보고 굉장히 잘 됐어요.
2007년 KT&G 매니저로 합류했습니다.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한지 1년 6개월 정도가 흘렀는데 당시 코치였던 이상범 감독님께서 매니저 저리가 비었는데 할 생각 없냐고 연락을 주셨어요. 베이커리 카페 장사가 잘 될 때라서 투잡을 해보자는 마인드로 제의를 받아들였죠. 근데 매니저 일과가 정말 바쁘니까 매장 관리가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2~3달 후에 베이커리 카페를 정리했어요. 유행 타는 업종이라고 생각해서 아쉬움은 전혀 없었죠.
2011-2012시즌 KGC의 창단 첫 우승을 함께 했는데 당시 기분이 어땠나요?
너무 좋았어요. 프로에서 우승이라는 게 정말 쉽지 않은데 그 당시 팀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코칭스태프, 선수단, 프런트까지 합이 잘 맞았어요. 선수들은 은희석, 김성철 선배님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우승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죠. 그 당시에는 팀에 사소한 잡음 하나조차도 없었던 것 같아요.
2013-2014시즌을 끝으로 매니저를 그만두고 하와이에서 개인 사업을 했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린 선수들이 제 눈치를 보더라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 늦기 전에 공부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팀에 정중히 말씀드리고 나오게 됐죠. 미국 유학 준비를 하는데 영사관에서 비자 발급 허용을 안 해주더라고요. 나이가 있고, 결혼까지 했으니까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이 시기에 지인 한 분을 소개받아서 하와이에서 푸드트럭 장사를 시작했어요.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푸드트럭이 많지 않았거든요. 제가 운영을 하고, 지인 분이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셨죠. 처음엔 디저트를 판매하다가 나중에 한국 음식을 팔았어요.
은희석 감독님이 제가 연세대 1학년 때 4학년이셨어요. 그리고 SBS에서 한솥밥을 먹었죠. 제가 매니저로 팀에 갔을 때도 최고참이었고요. 아마 저를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사실 처음엔 거절했는데 꾸준히 연락을 주셔서 어쩌다 보니 이끌려서 가게 됐죠.
원래 지도자 생각이 있었나요?
엄두를 못 냈죠. 제 커리어로 지도자를 하기엔 쉽지 않았으니까요. 지도자를 하기 위해서는 인맥도 좋아야 되는데 저는 탄탄하게 구축하지 못했어요. 하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감사하게도 은희석 감독님이 제안을 해주셔서 경력을 쌓으면 다른 데서도 불러줄 수 있으니까 최선을 다하려고 했어요.
코치로서 시행착오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은희석 감독님이 굉장히 꼼꼼하고, 세심하세요. 반면, 저는 하와이에서 장사하고, 놀다 들어와서 연세대의 칼 같은 시스템에 적응을 잘 못했죠. 연세대라는 학교에 대한 부담감도 있고요. 뭣도 모르고 합류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코치 겸 매니저 업무를 함께 병행했는데 일하는 건 큰 문제가 없었어요.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아요.
선수 시절 겪어봤기에 벤치 멤버들이 더욱 눈에 밟힐 것 같습니다.
일부러 경기를 많이 뛰지 못하는 선수들한테 더 엄하게 대하는 것 같아요. 이 친구들이 성장하는 걸 보면 뿌듯하더라고요. 열심히 노력은 하는데 어느 순간 스스로 만족하는 시기가 와요. 그럼 따로 불러서 자극을 주려고 하죠. 요즘 (안)성우가 많이 올라왔는데 보면서 흐뭇하더라고요. 어쨌든 승부의 세계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에 벤치 멤버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해요.
코치로 합류한 후 2021년까지 연세대가 대학리그 왕좌를 지켰는데요?
은희석 감독님이 모든 걸 다 하셨죠. 저는 선수들이 엇나가려고 할 때마다 불러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줬어요. 프로 가면 만만치 않다는 걸 말해주고, 인생에 대한 조언도 많이 해주려고 했어요. 농구적인 면에서는 은희석 감독님의 시스템에 맞게 가르치려고 했죠. 다행히 선수들이 잘 따라와 줘서 계속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경쟁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강자에요”
지난해 윤호진 감독은 또 한 번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은희석 감독이 서울 삼성 사령탑으로 떠나게 되면서 갑작스럽게 감독대행을 맡게 된 것. 여기에 가드진의 핵심 양준석, 이민서 무릎 부상을 당하는 악재까지 겹쳤다. 그럼에도 윤호진 감독은 빠르게 팀을 추슬렀고, 연세대를 정규리그 2위(11승 3패)에 올려놨다. 비록 8강 플레이오프에서 건국대에 불의의 일격을 당했지만 가능성을 보여주며 지난 3월 정식 감독으로 승격됐다.
지난해 갑작스럽게 감독대행을 맡게 됐는데요?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은희석 감독님이 나가셨고, 양준석과 이민서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 됐죠. 팀이 위기였어요. 그래도 ‘나는 안 돼’라는 생각보다 ‘1년 감독대행 하고 그만둬도 된다’라는 마인드를 가지려고 했어요. 그래서 눈앞에 놓인 한 경씩 해결해나가려고 노력했더니 오히려 잡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솔직히 고려대도 이겨보고, 우승도 하고 싶었는데 거기까진 힘들더라고요.
제가 코치 때는 감독님이 시키는 것만 했어요. 감독님의 시스템 안에서 엇박자가 나지 않도록 보조해주는 역할이었죠. 감독이 되면서 많은 권한이 생겼는데 저는 코치와 모든 걸 공유하고 싶어요. 그래서 김용우 코치한테 마음껏 의견 제시하라고 했죠. 감독 생각이 주가 되겠지만 코치 의견이 맞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감독과 코치가 함께 노력해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양준석과 이민서가 무릎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게 가장 큰 타격이었을 것 같은데요?
요즘 가끔 작년 경기를 한 번씩 보는데 암담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얼마 전에 ‘내가 기존의 시스템만 너무 강하게 밀어붙였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수 가용 인원이 없고, 상대적으로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들한테 기존에 하던 걸 계속 강조했으니까요. 그래도 선수들과 많은 대화를 통해서 하나가 되려고 노력했어요. 기존 시스템에서 탈피하려 했다면 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들긴 해요.
8강 플레이오프에서 건국대에 패하며 이변의 희생양이 됐습니다.
절대 자만하지 않았어요. 그날 경기에서 나오지 말아야 되는 플레이가 다 나왔어요. 그것도 가장 중요한 4쿼터 막판 3분 사이예요. 평소 선수들한테 기본적인 걸 강조하는데 몸싸움 안 하다가 공격 리바운드 뺏겨서 실점하고, 수비 소홀히 하다가 3점슛을 맞았어요. 아마 선수들도 힘드니까 집중력이 떨어진 것 같아요. 건국대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도 충격패였어요.
그럼에도 지난 3월 정식 감독으로 내부 승격됐는데요?
미국 전지훈련 가기 하루 전에 체육위원회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정말 기분 좋더라고요. 날아갈 듯이 기뻤죠. 저도 사람이다 보니 그동안 애정을 쏟은 만큼 기회를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근데 주위에서 안 좋은 소문이 많이 들리더라고요. 이제 와 욕심낸다고 감독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기다리고 있었어요. 1년 동안 감독대행을 하면서 얼마나 무겁고 책임감이 필요한 자리인지 알기 때문에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올해 이주영, 이채형, 강지훈 등 유망주들이 신입생으로 합류했습니다.
연세대, 고려대가 계속 정상을 지키는 건 좋은 선수들이 꾸준히 수급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선수들의 시너지를 얼마나 잘 내느냐가 관건이죠. 작년에는 부상 선수가 많아서 팀에 부족한 점이 많았어요. 올해는 장점 있는 선수들이 포지션 별로 들어왔죠. 사실 감독대행하면서 많이 만나러 다녔어요. 어필도 많이 했고요.
현재 팀에 가용 인원들이 많아요. 빅맨에 이규태, 김보배, 강지훈, 홍상민이 있고 앞선에는 이채형, 이민서, 유기상, 이주영이 있죠. 빅맨 4명 중에 3명이 함께 뛰어도 수비 로테이션에 무리가 없게끔 만드는 게 목표 중 하나에요. 이규태와 김보배는 외곽 플레이가 가능하게끔 만들어보고 싶어요. 수비 로테이션 도는 걸 알면 프로 가서 적응하기 쉽거든요. 선수들이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는 농구를 했으면 좋겠어요.
선수 시절 주목받지 못해도 지도자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은데요?
저도 화려한 선수 시절은 아니었지만 프로에서 우승하는 감독님들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을 가졌어요. 농구를 잘하면 잘하는 만큼 보이는 것도 많겠지만 벤치에서 계속 경기를 지켜본 것도 절대 무시할 수 없거든요. 선수들이 일찍 은퇴해도 지도자의 꿈을 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결국은 경쟁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강자니까요. 저도 성공한 선수들이 미국 가서 지도자 연수를 받는 걸 보며 부러웠어요. 하지만 그 친구들은 그만큼 열심히 했으니까 성공한 거예요. 저 같이 바닥부터 올라간 사람들은 내실을 잘 다지면서 올라온 만큼 부딪쳤을 때 더 튼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마지막으로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나요?
선수들하고 경기 중에 화내지 않기로 약속했어요. 열심히 하려고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더라고요. 물론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면 혼내겠지만 팀 시스템 안에서 재밌게 농구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럼 선수들이 더 신나서 뛰어다닐 거고, 장점도 극대화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주변에서 ‘연세대 분위기가 달라졌네?’, ‘저렇게 자율적인데도 선수들이 열심히 하네’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 윤호진 감독 프로필
생년월일
1980년 2월 21일
신장/체중
192cm/90kg
학력
명원초-구로중-단대부고-연세대
선수 경력
2003~2005 안양 SBS
지도자 경력
2017~2022 연세대 코치
2022 연세대 감독대행
2023~현재 연세대 감독
# 사진_점프볼 DB, KBL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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