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와 크툴루 싸우면 누가 이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명탐정 셜록 홈즈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원작 소설 뿐만 아니라 연관 도서,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에서 활약하고 있죠. 반면 이러한 유명세에 비해 관련 게임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셜로키언이라면 아마 프로그웨어즈가 개발한 셜록 홈즈 게임 시리즈를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프로그웨어즈는 2002년 출시된 '셜록 홈즈: 미라의 미스터리'를 시작으로 꾸준히 셜록 홈즈 게임을 출시하고 있죠.
4월 11일 출시된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는 2007년 출시된 동명의 게임을 언리얼 엔진으로 리메이크한 게임입니다. 킥스타터를 통해 진행된 이 리메이크 계획은 4800여 명의 후원자가 약 3억 원을 모금해 성사될 수 있었습니다.
셜록 홈즈와 러브크래프트라니 벌써부터 흥미진진한 조합이죠. 냉철한 이성의 화신인 셜록이 미지에 대한 공포가 테마인 크툴루 신화를 접하게 됐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과연 이 게임, 재미있을까? 직접 플레이 해 봤습니다.
장르: 호러 어드벤처
출시일: 4월 11일
개발사: 프로그웨어즈
플랫폼: 콘솔, PC
■ 연쇄 실종 사건에 크툴루를 끼얹은 추리 활극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는 연쇄 실종 사건을 수사하던 셜록과 왓슨이 고대 신을 숭배하는 음산한 컬트 교단과 엮이며 벌어지는 일련의 모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날카로운 통찰과 명징한 이성, 빈틈 없는 논리로 세상을 오시하던 셜록은 디 어웨이큰드에서 비이성과 광기, 몽매 그 자체인 외계의 존재와 조우하게 됩니다.
셜록과 왓슨은 런던의 베이커가, 스위스의 정신병원, 루이지애나의 늪지대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실종 사건의 실마리를 추적하는데요. 불경하고 모독스러운 광기에 잠식되면서도 끝끝내 진실을 찾는 여정을 멈추지 않습니다.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는 클래식한 추리 게임입니다. 사건 현장을 발견하고, 관찰을 통해 찾은 단서를 조합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죠. 시체의 사인을 자세히 파악하거나 약물을 조제하기 위해 동행한 왓슨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 미니맵, 퀘스트 없이 발로 뛰어 완성하는 추리
이 게임의 독특한 점이라면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미니맵이나 게임 진행 상황을 안내하는 메인 퀘스트 등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플레이어는 정말 셜록 홈즈가 된 듯 주변 행인을 탐문하고, 찾아낸 단서를 통해 다음 진행 방법을 유추해야 합니다.
이렇게 수집한 증거 물품 및 증언들은 기억의 궁전을 통해 조립할 수 있습니다. '똑똑한 셜록은 눈치챘겠지만 나는 감도 안 잡히는' 상태의 플레이어라도 오답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어요. 상냥하게 틀린 선택지를 삭제해 줍니다. 기억의 궁전을 통해 완성된 추리로 관련 인물을 추궁할 수도 있습니다.
'집중'은 셜록의 고유한 능력으로 이를 통해 숨겨진 단서 도출, 사건 현장의 재구성이 가능합니다. '오브라딘 호의 귀환'에서 신비한 회중시계를 통해 당시 그 사건을 재현할 수 있었듯, 셜록 또한 본인의 추리를 통해 그 당시 상황을 재현할 수 있는 거죠.
추리 게임답게 추리 시스템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요구하는 동선은 깔끔한 편이지만, 한 번 단서를 놓치면 진행이 막혀 오만 곳을 헤매야 하는 것은 불편했네요. 너구리가 물고 간 정원의 손가락을 발견하지 못해 저택 안을 하루 종일 빙빙 돌기도 했습니다.
■ 뻔하지만 흥미로운 클리셰적 전개
스토리 라인은 선형적이고 평이합니다. 사실 사이비 컬트 교단이 사람 납치해서 뭐 하겠습니까? 제물로 바치겠죠. 셜록과 왓슨의 여정은 대체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줄기로 흘러갑니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광기 체험으로 인해 탐사자 셜록의 정신력이 깎이는 것도 익숙한 전개고요.
오히려 현실적 공포를 가미한 블랙 에델바이스 정신병원 챕터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전두엽 절제술을 받은 환자들의 멍한 눈빛과 행동이 절로 소름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실제로 19세기 말 전두엽 절제술이 고안된 역사적 사실이 연상돼 오싹하더라고요.
비현실적 체험은 대체적으로 흑백의 모노톤으로 구성된 공간에서 퍼즐을 푸는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미니 맵이 존재하지 않고 구분도 잘 되지 않는 장소를 반복해서 돌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멀미가 났습니다. 특히 셜록이 집중할 때에는 흐린 시야로 현기증이 날 정도였어요.
■ 불편한 조작감과 부족하게 느껴지는 플레이타임
사실 이 게임 대부분의 단점은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를 개발한 프로그웨어즈가 우크라이나 게임사라는 것을 생각하면 대부분 이해할 수 있기는 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개발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는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니까요.
어딘가 어설픈 표정이나 움직임 등은 나름 러브크래프트적 기괴한 맛을 살리기도 했습니다. 다만 시점 전환이나 이동 등 불편한 조작감이 전반적인 플레이 경험을 저하시키는 것은 확실히 아쉬웠네요.
특히 소위 말하는 '위치렉'이 심했는데요. 이동 시 왓슨이 문을 가로막거나 구조물에 끼이는 등 사소한 해프닝부터 배를 몰고 늪지대를 탐사할 때 배가 옆으로 뒤집힌 채로 이동하는 빵터질 만한 이슈도 있었습니다.
플레이 타임도 다소 부족했습니다. 후반부 챕터를 진행할 땐 "벌써 챕터 끝이야"하고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초반부 몰입에 비해 후반부가 심심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마 볼륨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 추리 마니아, 셜로키언이라면 놓칠 수 없는 게임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는 물론 단점이 존재하는 게임입니다. 그러나 이 게임을 포함한 프로그웨어즈 셜록 홈즈 시리즈가 지속적으로 신작을 출시하는 유일한 셜록 홈즈 게임이며, 동시에 꾸준하게 공식 한글화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가산점을 줄 수 있습니다.
클래식한 추리 게임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아마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러브크래프트의 팬이라면 게임 내의 텍스트나 상징물을 흥미롭게 볼 수 있겠네요. 셜록 홈즈 팬이라면 셜록과 왓슨 콤비를 게임으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실 테고요. 이번 주말은 잘생긴 셜록&왓슨 콤비와 크툴루 신화 체험을 떠나시는 건 어떠신가요?
1. 발로 뛰는 현장감 넘치는 추리
2. 언리얼 엔진으로 구현된 잘생긴 셜록과 왓슨
3. 훌륭한 시대상 고증
1. 불편한 조작감과 3D 멀미
2. 길치에게 상냥하지 않은 NO 미니맵 시스템
3. 충분치 못한 플레이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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