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디펜스’ 앞둔 KGC “1순위여도 양희종이었어요”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립 서비스가 아니라 우리는 1순위여도 (양)희종이었어요.” 양희종을 선발할 당시 사무국의 일원이었던 KGC 관계자의 회고다. 2007년은 역대 최고의 ‘황금 드래프트’라 불려도 손색없는 드래프트로 회자 되고 있다. 전체 1순위로 서울 SK에 지명된 김태술은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고, 10순위로 선발된 함지훈(현대모비스)은 여전히 최정상급 스타로 활약 중이다. ‘10순위의 신화’라 불리기도 했다. 양희종 역시 2007 드래프트 출신이다. 예년이었으면 최고의 영예인 1순위로 손색없는 유망주였으나 김태술, 이동준에 밀려 3순위로 내려앉았다. 스스로도 “당시 제 표정 보면 알겠지만 기분이 별로 안 좋았어요”라며 지명 결과에 대한 아쉬움을 곱씹었다.
물론 순위가 아쉽다는 의미일 뿐, 그는 “KGC는 제 농구 인생의 행운이었어요. KGC에 입단한 덕분에 선수 생활을 행복하게 할 수 있었죠”라며 선수 생활을 돌아봤다. KGC에게도 큰 행운이었다. 반대로 말해 KGC로선 3순위로 어림도 없을 거라 예상했던 양희종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KGC 관계자는 “당시 감독이었던 유도훈 감독과 연세대 연습경기를 보러 갔습니다. 상대는 외국 대학이었을 거예요. 외국선수들을 상대로 겁도 없이 리바운드를 따내더라고요. 수비도 죽기 살기로 했고, 덕분에 동료들은 공격에 더 힘을 쏟을 수 있었죠. 그때 결정했습니다. 1순위면 무조건 양희종이라고. 앞에 있던 두 팀이 다른 선수를 지명해 속으로 만세 불렀죠”라고 돌아봤다.
기대대로 양희종은 KGC가 필요로 하는 퍼즐이 됐다. 신인임에도 높은 팀 디펜스 이해도를 보여준 것은 물론, 몸을 아끼지 않는 수비로 KGC(당시 KT&G)의 에너지 레벨을 끌어올렸다. 덕분에 주희정을 중심으로 구축한 KGC의 런 앤 건 역시 위력을 더할 수 있었고, 양희종은 데뷔 2년 차인 2008-2009시즌에 처음으로 수비 5걸에 선정됐다. 입단 당시만 해도 팀이 필요로 한 조각 가운데 하나였지만, 지나고 돌아보니 양희종은 KGC가 강팀으로 부상하는 데에 있어 초석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KGC는 2008-2009시즌 종료 후 대대적인 리빌딩에 돌입했다. MVP 주희정을 김태술과 맞바꾼 데에 이어 양희종도 입대해 2년 후를 내다봤다. KGC는 이어 리빌딩 기간 동안 폭넓게 신인을 수급했다. 2010 드래프트에서 1, 2순위 지명권을 모두 얻어 박찬희와 이정현을 지명했고, 2011 드래프트에서는 오세근을 손에 넣었다. ‘인삼신기’는 그렇게 결성됐다. KGC 관계자는 “돌아보면 희종이가 입단한 덕분에 리빌딩도 시작할 수 있었던 거죠. 지금의 KGC를 논할 때 희종이는 그야말로 초석이었습니다”라고 돌아봤다.
개성 강한 스타들이 한 팀에 모인 만큼, 누군가는 궂은일을 도맡아야 했다. 그게 양희종이었다. 입대 전 추승균을 상대로 만화에서나 볼 법한 블록슛을 만들기도 했던 양희종은 제대 후에도 왕성한 활동량을 뽐냈다. 슛 컨디션은 들쑥날쑥했지만, 수비는 기복이 없었다. 특히 ‘동부산성’이라 불렸던 원주 동부(현 DB)와의 2011-2012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드롭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 KGC의 창단 첫 우승에 기여했다. 공격에서도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KGC가 3승 2패로 앞선 챔피언결정전 6차전 종료 9초 전. 양희종은 동점으로 맞선 상황서 김태술의 패스를 받았고, 페이크로 윤호영을 따돌린 후 뱅크슛을 터뜨렸다. KGC가 창단 첫 우승을 결정지은 결승득점이었다. 양희종이 꼽은 인생경기이기도 했다.
양희종은 연세대 재학 시절 공수를 겸비한 선수였다. 4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6 대학농구 2차 연맹전 중앙대와의 경기에서는 28점을 기록하며 연세대에 공동 우승을 안기기도 했다. 잘생긴 외모까지 지녀 김동우(LG 코치)의 뒤를 잇는 ‘연대 서태웅’이라 불리기도 했다. KGC가 첫 우승을 차지할 때도 클러치 상황서 한 방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지만, 양희종이 이후 다시 공격에서 두각을 드러내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부 팀들은 새깅 디펜스를 통해 외국선수나 이정현 봉쇄에 중점을 두기도 했다. 실제 양희종은 데뷔 후 매 시즌 평균 한 자리 득점에 그쳤다. “대학 때는 공격에 더 비중을 뒀던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프로에서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라는 마음이 강해 수비에 온 힘을 기울였어요. 체력의 100%를 수비에 쏟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죠. 수비에서 힘을 다 쓰니 정작 공격할 땐 숨이 차서 호흡 조절이 안 되고, 슛 자세도 흐트러지더라고요.” 양희종의 말이다.
그럼에도 KGC는 2014년, 첫 FA 자격을 취득한 양희종에게 첫 시즌 보수 6억 원을 안겼다. 2013-2014시즌 기준 보수총액 공동 2위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 코트 안팎에서 양희종이 끼친 영향력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실제 양희종은 FA 계약을 맺은 직후부터 주장까지 맡아 리더십을 발휘해왔다. 구단 안팎에서 유쾌하지 않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선수단이 동요하지 않도록 이끈 일도 수차례 있었다. 수비에서의 영향력도 여전했다. 양희종은 2014-2015시즌부터 2018-2019시즌에 이르기까지 KBL 최초로 5시즌 연속 수비 5걸에 선정되기도 했다.
몸을 아끼지 않는 수비를 해왔던 탓일까. 어깨, 허리, 발목 등 그의 몸은 성할 날이 없었다. 상대와 충돌, 눈 안에 피가 고이는 아찔한 부상을 입기도 했다. 부상이 거듭된 까닭에 데뷔 시즌을 제외하면 전 경기 출전을 기록한 적도 없다. 하지만 양희종은 반문한다. “몸을 사리면서 농구를 했다면, 지금의 양희종이 있었을까요?”라고. 다치는 것보다 상대의 득점을 못 막는 게 더 싫고, 스스로를 서태웅보단 강백호에 가깝다고하는 이가 바로 양희종이었다. KGC가 개성 넘치는 선수단을 오랫동안 구성해왔던 와중에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둔 숨은 원동력이기도 했다. 양희종은 KGC가 창단 첫 통합우승을 달성한 2016-2017시즌에 다시 숨겨뒀던 발톱을 드러냈다. 정규리그에서는 평균 3.9점에 그쳤지만, 서울 삼성과의 챔피언결정전 6차전에서 9개의 3점슛 가운데 무려 8개를 성공시키며 또 한 번의 인생경기를 만들었다. 문태영에 대한 견제도 소홀히 하지 않은 가운데 보여준 폭발력이기에 더욱 돋보인 활약이었다.
양희종은 통합우승 직후인 2017-2018시즌에 데뷔 후 2번째로 많은 평균 30분 37초를 소화하는 등 여전히 팀 전력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지만, 이후 시즌을 거듭할수록 서서히 조연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신을 롤모델로 삼았던 문성곤이 군 제대한 이후에는 평균 출전시간이 20분 미만으로 내려갔다. 또한 2020-2021시즌, 2021-2022시즌은 부상 여파로 정규리그서 각각 30경기도 소화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양희종은 KGC가 여전히 필요로 하는 리더였다. 문성곤을 비롯한 후배들이 흔들릴 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것도,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준 것도 양희종이었다. 그는 팀의 배려로 2020-2021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 순간을 코트에서 누리기도 했다.
KGC는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에 그친 2021-2022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취득한 양희종과 3년 재계약했고, 양희종은 그렇게 ‘종신 KGC맨’이 됐다. 그랬기에 2022-2023시즌 중반 발표된 양희종의 은퇴 선언은 KGC 팬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을 터. 사실 양희종은 지난 시즌부터 은퇴 시기에 대한 생각을 거듭했다. 족저근막염을 안고 있었던 데다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줄 시기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3년 계약 후 맞은 첫 시즌이지만, 양희종은 KGC가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올 시즌이 물러나는 데에 적기라는 결정을 내렸다. “계약기간에 연연하지 않고 서로 좋을 때 좋은 그림으로 헤어지는 게 괜찮을 것 같았어요. 후배들도 각자 역할을 잘해주고 있어서 제가 굳이 주장을 더 할 이유도 없어 보였고요. 마침 EASL 초대 우승도 해서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요. 통합우승까지 달성하고 은퇴한다면, 누구보다 행복하게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양희종의 말이다.
은퇴 의사를 밝혔지만, 양희종의 농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한 KGC는 이제 지난 시즌 눈앞에서 놓친 통산 4번째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위한 도전을 남겨두고 있다. 자칫 순항 중인 팀 분위기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 걱정돼 은퇴 고민도 후배들에게 드러내지 않은 양희종이었다. 이제는 후배들이 그의 마음을 헤아려 정신 무장을 마쳤다. KGC 선수들은 “(양)희종이 형 덕분에 꼭 우승해야 할 이유가 생겼어요”라며 V4를 꿈꾸고 있다. KGC 역시 양희종이 마지막으로 치르는 플레이오프라는 데에 착안, ‘라스트 디펜스’라는 슬로건 속에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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