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 시절 공동급식소 폐허에 12년 만에 생긴 유치원[키르기스스탄의 봄②]

2023. 4. 1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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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숙원 유치원 설립…예산부족으로 번번이 실패
코이카 지원…면정부와 주민 합심해 예산 확보 성공
“유치원이 생길지 믿지 못했다…이제 일할 수 있어”
2단계 비닐하우스 농업 시작…“아샤르 전통 되살려”
11일(현지시간) 키르기스스탄 오쉬주 아라반군 숫콧 마을의 '칼타주 에네 유치원'. [오쉬=최은지 기자·외교부 공동취재단]

[헤럴드경제(오쉬)=최은지 기자·외교부 공동취재단] 키르기스스탄 남부에 위치한 제2의 도시 오쉬시로부터 34㎞ 떨어진 아라반군 유스포바면 ‘숫콜’ 마을에는 구소련 시대에 집단농장 옆에 위치한 공동급식소 터가 폐허로 남아있었다.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후 공동급식소 터는 정부 소유로 귀속됐다.

110가구 75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숫콜 마을의 숙원사업은 바로 유치원 설립이었다. 한 가정당 세 자녀가 평균 가족구성원인 다자녀 문화가 남아있는 시골마을에서는 아이를 돌보느라 여성들이 일을 하기 어려웠다.

그동안 면정부가 수차례 유치원 건립을 추진했고 공동급식소 터를 부지로 확보했지만 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기자재 등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유치원 건립은 요원해져만 갔다.

숫콜 마을은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의 새마을 기반 농촌 개발 사업을 만났다. 먼저 마을 주민들이 모여 가장 필요한 인프라로 유치원 설립을 결정했다. 코이카는 2만5000달러를 지원했고, 면정부는 건축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했는데 이 예산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면정부에서 3만5000달러의 예산을 지원했고, 특히 마을 주민들은 십시일반으로 4000달러의 기금을 모아 1660㎡ 규모의 ‘킬타주 에네 유치원’이 설립됐다. 주민들이 인프라 시설을 위해 예산을 확보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학무보인 아이다 크주 루스탐벡(33·여) 씨는 11일(현지시간) “이 사업이 시작된다고 했을 때 실현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못했다”고 밝혔다. 12년 동안 시도했으나 번번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11일(현지시간) 키르기스스탄 제2의 주도 오쉬시로부터 34km 떨어진 아라반군에 위치한 숫콜마을은 해발고도 760m에 위치, 110가구 750명의 주민이 터를 잡고 있다. 구소련 시대에 공동급식소로 쓰이던 부지가 정부 소유로 편입됐지만 자금이 없어 시설 건립이 이뤄지지 않았다. 1단계 기초사업으로 마을 주민들이 유치원 서립을 결정했고, 코이카의 지원과 면정부, 주민 자치기금으로 '칼타주 에네 유치원'이 설립됐다. [오쉬=최은지 기자·외교부 공동취재단]

이제 60명 정원의 유치원은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선생님과 시설관리인 등 17명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한부모 가정 등 취약계층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면정부가 일부 학비를 지원해 월비는 6달러다.

네 자녀를 둔 루스탐벡 씨는 “막내를 유치원에 보내고 저는 일하러 간다”며 “유치원이 생기면서 생활이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아이를 맡길 곳이 생기니 그 시간에 여성들이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딜다라 톨로노바 유치원장은 “학부모님들이 아이를 데리고 농사를 짓는 경우가 많았는데, 유치원이 생기고 여가도 잘 활용할 수 있게 됐다”며 “유치원에 고용된 주민 17명은 가까운 곳에서 일자리를 찾게 돼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공동급식소 폐허 대신 아이 웃음소리 가득…집단농장터엔 비닐하우스가
11일(현지시간) 키르기스스탄 오쉬주 아라반군 숫콧 마을의 비닐하우스에서 피망 재배를 하고 있다. 작물은 '칼타주 에네 유치원'에 기부하기도 하고, 판매한 수익의 10%는 마을발전기금으로 기부한다. [오쉬=최은지 기자·외교부 공동취재단]

유치원 건립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마을 주민들은 2차 사업으로 과거 집단농장으로 쓰여 공터로 남아있는 인근 부지에 비닐하우스 농사를 하기로 했다.

집단농장이 있었던 만큼 광활한 노지에 각종 작물을 키우고 있지만, 비닐하우스 재배가 필요한 작물이 있기 때문이다. 키르기스스탄 국민이 주식으로 먹는 샐러드에 오이와 토마토가 주로 들어가는데, 한겨울 체감온도가 영하 30도로 내려가는 날씨에 오이값이 3~4배나 뛴다.

비닐하우스 농업의 원칙은 혜택을 받는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 6명이 시설관리를 담당하고 농사 방법도 배워 지난해에는 오이와 토마토 재배에 성공해 유치원에 식재료로 공급하기도 했다. 취재진이 찾았을 당시에는 피망 재배에 한창이었다. 수익의 10%는 마을발전기금으로 기부하면서 지속가능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압살롬 키르기즈바에프(65) 프로젝트 리더는 “면정부에서 6000달러를 지원했고 굿네이버스를 통해 그린하우스 재배 교육을 받아 이모작을 할 수 있게 됐다”며 “코이카의 지원을 통해 지역 주민들이 ‘아샤르’ 전통을 되살려 함께 협력하게 됐다”고 밝혔다. ‘아샤르’는 우리나라의 두레, 품앗이와 비슷한 노동 문화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하면서 성취감이 높아지고,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사업의 가능성이 커졌다.

지윤근 코이카 키르기스스탄 사무소 부소장은 “한국이 가진 농촌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키르기스스탄에서 추진한 사업이 우수한 성과를 나타냈기 때문에, 향후에도 우수한 사업을 계속해서 발굴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silverpap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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