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양곡관리법 정치’ 함정에서 헤쳐나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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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수급 안정화 방안을 둘러싼 논쟁이 이제 정치문제로 비화하면서 뚜렷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게 아닌지 염려스럽다.
사실 쌀 수급 안정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는 문제의 출발점이 1980년대 세계 무역자유화 물결 속에서 잉태된 '쌀시장 개방'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다.
쌀 수급으로 얽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업·농촌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되짚어보고, 공익성과 존재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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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수급 안정화 방안을 둘러싼 논쟁이 이제 정치문제로 비화하면서 뚜렷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게 아닌지 염려스럽다. 사실 쌀 수급 안정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는 문제의 출발점이 1980년대 세계 무역자유화 물결 속에서 잉태된 ‘쌀시장 개방’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다. 쌀시장 개방은 우리 농업만이 아니라 모든 산업의 명운과도 깊이 연결된 민감한 과제다. 우리나라 모든 산업과 관련됐다는 얘기는 결국 쌀 소비자·생산자 등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모든 국민과 이 문제가 얽혀 있어 해결이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정치평론가로 명성을 쌓은 어느 교수가 이달초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쌀 자동시장격리제를 규정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비판하며 느닷없이 농민에 대한 폄하 발언을 했다. 그는 “(정부가) 쌀을 사주면 농민들이 쌀농사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 과잉생산인데도 계속 생산한다”며 “농민은 그러면 영원히 정부한테 손 벌리는 존재가 돼버린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마치 농민을 자립심이 부족한 존재인 것처럼 표현해 사기를 짓누르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했다. 그러면서 법에 대한 찬반 공방만 뜨겁게 만들었다.
그동안 농가소득 안정을 위한 정부 정책의 틀은 주요 농산물을 정부가 수매하는 것에서 공익형직불제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우리나라는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 중 하나로, WTO 정책 기조에 발맞춰 2020년부터 공익직불제를 도입·시행했다. WTO는 정부가 직접 개입해 시장가격을 지지하거나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정책을 제한한다. 하지만 공익직불제는 WTO에서 규제하지 않는 ‘허용 보조’에 해당돼 국제사회의 농업 보조금 논란에서 자유로운 농가소득 보전 방안으로 꼽혔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공익직불제는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이 존재함을 전제로 탄생한 제도라는 점이다. 이 공익적 기능의 존재는 국민적 합의에 기초해 작동한다. 즉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공익직불제가 시행될 수 있다.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형성돼 있다’는 말의 의미는 농민이 농업 활동을 통해 국토 환경 및 자연환경 보전에 기여하는 등 공익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공감대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만일 국민적 합의가 공고하다면 정치평론가의 농민 폄하 발언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쌀 수급으로 얽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업·농촌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되짚어보고, 공익성과 존재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마련해야 한다. 만약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에 대해 국민적 합의라는 기본 토대를 마련하지 못한 채 제도가 시행됐다면 이제부터라도 미흡한 합의를 보완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농정의 수요자는 개별 농민이 아닌 국민 전체다. 따라서 농산물을 소비하는 대다수 국민 또한 공익직불제와 관련해 제대로 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때 인식은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인 대다수 국민이 소통하고 교감할 때 만들어지며, 농민이 어떤 시각으로 소비자를 바라보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공감대의 크기가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양자간 소통이 원활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농민의 관점과 태도가 중요하다. 농민의 의미 있는 노력을 기대해본다.
이내수 향토지적재산본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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