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오페라가 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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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유학 시절, 중세도시 페루자에서 언어학교 생활을 마치고 로마 산타체칠리아국립음악원 피아노과에 입학하면서 이사를 했습니다.
더 큰 세상에서 좋은 스승님과 음악적 동지들을 만나 음악뿐 아니라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며 폭넓은 경험을 할 기회가 주어지니 하루하루 꿈만 같은 시간이었지요.
이탈리아 로마에는 성악을 전공하는 유학생들이 정말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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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유학 시절, 중세도시 페루자에서 언어학교 생활을 마치고 로마 산타체칠리아국립음악원 피아노과에 입학하면서 이사를 했습니다. 더 큰 세상에서 좋은 스승님과 음악적 동지들을 만나 음악뿐 아니라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며 폭넓은 경험을 할 기회가 주어지니 하루하루 꿈만 같은 시간이었지요. 하지만 이 행복한 날들이 계속되려면 꼭 필요한 이것, 바로 ‘돈’이 있어야겠죠? ‘콜로세움’ 하면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 바쁜 낭만적인 곳이지만 제게는 학비를 보내줄 수 없으니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독촉(?) 전화를 받은 씁쓸한 곳으로 기억됩니다.
이탈리아 로마에는 성악을 전공하는 유학생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들은 음악원 내에서 진행하는 작은 연주와 실기시험, 콩쿠르 등에 늘 피아니스트를 동반해야 합니다. 저는 초견(악보를 처음 보고 바로 부르거나 연주할 수 있는 능력)이 좋은 편이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작업에 스트레스를 받기는커녕 더 즐기는 편이라 반주가 제 적성에 딱 맞았지요. 대학을 다닐 때부터 성악과 학생들의 반주를 많이 했었는데 그땐 외국어로 된 노래의 뜻을 알 수 없어 단순히 피아노 부분만 보며 연주를 했지만, 이탈리아에서 그들의 언어로 된 오페라를 반주하는 느낌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바리톤 성악가가 온종일 한국 관광객들을 가이드하고 몹시 피곤한 기색으로 마에스트로에게 레슨을 왔습니다. 나에게 악보를 건네는데 쉼표가 없이 계속 건반을 두드려야 하는 굉장히 어려운 테크닉의 곡이었습니다. 슬쩍 가사를 보니 “Cortigiani! vil razza donata(대신들아, 이 천벌 받을 나쁜 놈들아)”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가득 찬 분노와 원한을 상대에게 쏟아내는 주인공의 심정이 빠른 음악에서 느껴졌습니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투쟁하듯 간절하게 노래를 부르는 그의 호흡에 맞춰 반주를 하고 있자니 어느새 제 마음 한구석이 저리듯 아파져왔습니다. ‘가사 뜻을 다 알지 못하는데 왜 음악으로 주인공 심정과 상황을 알 것만 같지? 아! 오페라는 음악과 성악가의 목소리로 모든 감정을 온전히 표현한 예술이구나…’ 하는 깊은 깨달음이 왔습니다. 이 곡은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에 나오는 궁정 광대 리골레토가 부르는 아리아입니다. 목숨처럼 아끼던 딸 질다가 바람둥이 공작에게 납치되자, 딸을 돌려달라고 호통을 치다가 결국 눈물로 애원하는 비극적인 노래지요.
그날 노래를 부르던 성악가는 아내와 아들이 있는 가장으로 유학길에 올랐지만, 생계를 위해 가이드를 해야만 했습니다. 타는 듯한 로마의 태양을 이겨내며 말을 많이 하다보니 더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노래를 그만둬야 할지 슬럼프에 빠져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에스트로에게 레슨을 받으며 자신의 길을 결정하려는 중요한 순간이기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아픔이 땀과 눈물로 범벅이 돼 울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귀국 후, 한참 시간이 흐르고 그 노래를 부르던 성악가가 어느 대학의 교수님이 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반가웠던 기억이 납니다. 꽃향기가 진동하는 아름다운 계절,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오페라가 들려오나요?
이기연 이기연오페라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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