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人플레이션이 드리운 그늘, 옅어질 수 있을까
올해 경제화두는 물가다. 치솟는 대출금리도, 영끌족을 괴롭게 만드는 부동산 가격조정도 출발점은 물가였다. 한국 뿐 아니다. 세계 곳곳이 홍역을 치른다. 영국의 경우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월별 10%대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글로벌 경제를 좌우하는 미국은 강력한 금리인상으로 물가를 죄고 있으나 안정권에 진입하려면 좀 더 금리를 올려야 하고, 시간도 더 걸린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의 파산과 채용감소, 가계부채 부실화도 더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리콘밸리은행과 크레디트스위스 사태가 재발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특히 지정학적 갈등으로 촉발된 자유무역 시스템 해체가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경제 패권을 놓고 갈등하는 과정에서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됐고 이로 인해 양국을 오가는 각종 제품과 원부자재 판매가격이 올라가버렸다. 이는 다시 2차제품 가격상승으로 연결됐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와 식량가격 상승도 인플레이션의 주 원인 중 하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상화 될 것들이다. 미중갈등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젠가 끝날 것이고, 국제 원자재 가격도 현재의 변수들만 마무리되면 안정을 찾으리라는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인건비다. 일반적으로 원자재 가격은 경기가 둔화되면 내려가기 마련인데, 인건비는 추세를 유지하려는 힘이 무척 강하다. 인건비가 눈에 띄게 내려갈 때는 정말 심각한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빼고는 드물다. 최근 식량가격은 하락했지만 외식물가는 더 올라가는 이유도 높은 인건비 탓이 크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26.9로 2월의 129.7보다 2.1% 하락했지만 외식비 상승률은 7.4%를 기록해 2월(7.5%)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반면 농가가 인건비에 지출한 금액을 의미하는 노무비지수는 지난해 135.3으로 2019년(114.8)보다 17.86% 상승했다. 현장 목소리를 들으면 노무비지수는 올해도 꾸준히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상장기업들도 인건비 상승으로 적잖은 부담을 안고 있다. 지난해 상장기업들의 실적을 분석해보니 623곳 코스피 상장사들이 2021년 지출한 인건비는(IFRS 연결기준) 총 74조4312억원 가량이었는데, 이게 2022년에는 84조5413억원으로 13.58%(10조1101억원) 증가했다.
2022년 코스피 상장사들의 전년대비 영업이익 감소액(한국거래소 자료, 604곳 기업)은 27조4823억원(186조8947억원→159조4124억원)이었는데, 늘어난 인건비가 차지한 비중이 36.8% 정도였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해 임금 인상이 얼마나 재무제표에 부담이 됐는지 알 수 있다.
수치가 정확하지는 않다. 자료가 부족해 기업이 지출한 전체 인건비만 단순 계산했고 통계에서 빠진 기업과 해외법인, 기업이 성장하며 이뤄진 신규채용도 반영하지 못했다. 그래도 전체 흐름은 대략적인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인건비는 제품가격에 반영되기 마련이고, 이는 돌고 돌아 소비자들의 가계지출액을 키우게 된다.
올해도 기업들의 이익은 줄어드는데 임금인상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소비자 물가 고공행진이 계속되고, 대출금리 부담에 늘어난 교육비와 거주비를 생각하면 근로자 입장에서 임금은 포기할 수 없는 전제다. 반면 인건비가 다시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악영향을 생각하면 쉽게 임금을 올리라고 하기도 어렵다.
주요기업이나 IT기업, 증권사에 입사한 사회 초년생이 1억원에 육박하는 연봉을 받는 게 합당한지도 고민스럽다. 2021년 주요 증권사 직원들의 평균연봉은 2억원을 넘었는데, 2022년에는 증시침체가 시작되며 명예퇴직을 포함한 인력 구조조정이 강도높게 진행됐다.
내년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기 위한 논의가 18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가장 큰 관심사는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원을 넘을지 여부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지켜봐야겠다. 한국사회는 어떤 카드를 고를까.
반준환 증권부장 abc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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