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엄마 2만원만…” 피눈물 전세사기 피해자들, 나라는 어디에
인천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 3명이 잇달아 극단적 선택을 하자 정부가 뒤늦게 경매 중지 등 긴급 대책을 내놨다. 이들은 인천 일대에서 세입자들의 전세 보증금을 가로챈 이른바 ‘건축왕 남씨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남씨 일당은 금융권에서 빚을 내 빌라·아파트 2700여 채를 매입한 뒤 집값을 부풀리고 근저당권이 설정된 전셋집을 비싸게 임대하는 수법으로 125억원을 챙겼다.
집값 급락 여파로 남씨가 빚을 갚지 못하면서 현재 690여 채가 경매에 넘어가 있다. 경매로 집이 팔려 금융회사 선순위 채권을 갚으면 남는 돈이 거의 없어 세입자들은 보증금도 챙기지 못하고 빈털터리가 돼 집에서 쫓겨난다. 지난 17일 세상을 등진 30대 피해자의 경우 거주 아파트 한 동 전체 60채가 전세 사기에 걸려 경매에 넘어갔고, 이 중 20채는 이미 낙찰돼 세입자들이 쫓겨났다. 이 피해자는 숨지기 전 어머니에게 2만원만 보내 달라고 할 정도로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앞으로 경매에 넘어갈 피해 주택도 2000채를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비극이 또 터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그동안 경매 때 임차인 최우선 변제액 상향, 전세 대환 대출, 긴급 거처 지원 등의 전세 사기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근저당권이 설정된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는 문제에 대한 대책은 빠져 있었다. 피해자들은 일단 경매를 중지한 뒤 경매할 경우 피해자에게 우선 매수권을 주고, 경매 자금 대출도 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피해자 본인이 집을 낙찰받는 것이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채권자의 합법적 근저당권 행사를 막기 어렵다는 이유로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잇단 비극에 놀란 정부가 뒤늦게 경매 중지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진작 나왔어야 할 대응이다. 나아가 정부, 지자체, 피해자 협의체를 구성해 범정부 차원의 구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필요하면 전세 사기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세 사기 재발 방지 대책도 필요하다. 공인중개사, 감정평가사가 공모해 집값을 부풀려 전세 사기를 용이하게 만드는 이른바 ‘업(UP) 감정’을 막을 대책, 전세 보증 보험 가입을 확대하기 위한 보증 기관의 보증 여력 확대 등도 하루빨리 추진해야 한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려던 사람들이 아니다. 가족과 살 집 한 칸이 필요했던 사람들이다.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려야 하고, 이를 사회가 미리 막거나 구제하지 못한다면 나라와 정부는 존재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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