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드리블 리그 4위… 날아다니는 슛돌이
골도 없고 어시스트도 없었다. 그런데 양 팀 최고인 평점 9.1(후스코어드닷컴). 경기 최우수 선수에 선정됐다. 이제 업그레이드된 ‘슛돌이’가 스페인 프로축구 라 리가(La Liga)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강인(22·레알 마요르카)은 18일(한국 시각) 셀타 비고와 벌인 2022~2023시즌 라 리가 29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왼쪽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전 시간을 소화하며 팀의 1대0 승리를 이끌었다. 마요르카는 두 달 만에 승리를 챙기면서 승점37(10승7무12패)로 11위로 올라섰다.
이강인의 이날 활약상은 숫자가 말해준다. 팀 내 최다인 64회 공을 만졌고, 키패스(곧바로 슛으로 이어진 패스)는 4차례. 드리블 돌파도 9번 성공했다. 키패스와 드리블 돌파는 양팀 통틀어 가장 많았다. 다른 선수들은 많아야 1회였다. 스페인 매체 아스는 “이강인은 싸우고, 드리블하고, 달린다. 그라운드 어디에나 있는 이날의 주인공이었다”고 전했다.
이강인은 여섯 살 때 TV 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해 ‘축구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열여덟 살이던 2019년 폴란드 U-20(20세 이하) 월드컵에선 준우승 주역으로 골든볼(대회 MVP)을 수상했다. 리오넬 메시와 디에고 마라도나가 받았던 그 상이다. 하지만 이후 기대에 못 미쳤다. 발렌시아에서 벤치를 주로 지키며 성장통을 겪었다. 그러다 2021~2022시즌을 앞두고 마요르카로 유니폼을 바꿔 입은 게 전환점. 하비에르 아기레(65·멕시코) 감독 신임 속에 서서히 팀에 녹아든 그는 이번 시즌 확실한 주축으로 올라섰다. 9경기를 남겨놓은 가운데 라 리가 입성 다섯 시즌 만에 처음으로 출전 시간이 2000분을 넘었다.
날카로운 패스와 끈질긴 드리블 능력은 지난 시즌보다 한 단계 더 올라섰다. 리그 톱 수준이란 평가다. 이강인은 이번 시즌 3골 4도움. 어시스트는 리그 공동 14위다. 결정적 기회를 만드는 키패스가 지난 시즌(22개)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난 43개로 11위에 올라 있다. 크로스 횟수(148개)는 리그에서 넷째로 많다. 드리블 돌파 시도는 94회로 리그에서 열셋째로 많은데 성공 횟수가 59회로 당당히 4위다. 공격 전 지표에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약점으로 지적됐던 수비도 개선됐다는 지적이다. 18일 경기에서 이강인은 공중볼 경합에선 3번 모두 이겼고, 그라운드에서도 20번 경합 중 12번을 승리했다. 팀 동료가 공을 빼앗겼을 때 찾아온 횟수도 9번에 달했다.
이강인은 최근 왼쪽 미드필더로 출전한다. 주력(走力)이 뛰어나지 않아 전형적인 윙어로 뛰기보다는 탁월한 ‘탈(脫)압박’ 능력을 앞세워 중앙과 양 측면 사이 공간인 ‘하프스페이스’에서 효과적으로 공격을 풀어내고 있다. 하프스페이스 공략은 현대 축구 유행을 이끄는 페프 과르디올라(52·스페인) 맨체스터 시티 감독 등이 강조하는 전술이다.
관심사는 다음 행보. 2025년 6월 마요르카와 계약이 끝나는데 올여름 재계약 여부가 결정되지 않으면 계약 만료 전에 떠날 가능성이 크다. 이강인 에이전트인 하비에르 가리도가 최근 맨체스터 시티와 애스턴빌라, 울버햄프턴 구단 등을 방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행 전망도 나온다.
이강인의 ‘진화’는 2024 카타르 아시안컵과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앞둔 대표팀에도 호재다. 1981년생 박지성, 1992년생 손흥민에 이어 2001년생 이강인이 대한민국 축구의 ‘에이스’ 계보를 이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지난달 두 차례 평가전에서도 위르겐 클린스만(59·독일) 신임 대표팀 감독에게 합격점을 받았다. 클린스만 감독은 우루과이와 평가전이 끝난 뒤 “이강인은 손흥민과 함께 뛰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선수”라며 앞으로 중용할 뜻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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