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작가와 챗GPT가 함께 쓴 `SF소설`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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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3년, 한여름의 인천 바다. 해모수의 몸이 서서히 바닷물을 가르고 나아갔다. 섭씨 30도를 넘는 맑은 날씨였지만 바다는 바람에 식어 서늘했다."
책은 대화형 AI챗봇 챗GPT와 7인의 작가가 공동 집필한 국내 첫 SF 단편 모음집이다.
표제작을 쓴 신조하 작가는 챗GPT와의 소설 쓰기를 "눈치 없는 친구와 완성한 음흉한 문장들"이라고 소개하면서 "아무런 욕망이 없는 맑은 영혼, 딱 그 정도의 결과물을 반복해서 제시해 주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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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김달영 외 6인|212쪽|네오북스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2053년, 한여름의 인천 바다. 해모수의 몸이 서서히 바닷물을 가르고 나아갔다. 섭씨 30도를 넘는 맑은 날씨였지만 바다는 바람에 식어 서늘했다.”
SF(공상과학) 단편소설 ‘희망 위에 지어진 것들’의 첫 도입부다. 글을 쓴 건 지난해 오픈AI가 공개한 인공지능(AI) 대화형 챗GPT. 소설가 나플갱어가 함께 썼다. 현재 지구 생존에 가장 위협적인 기후 위기를 챗GPT에 묻고, 이런 현상이 방치될 경우의 미래상을 한국 무대로 발전시킨 작품이다.
책은 대화형 AI챗봇 챗GPT와 7인의 작가가 공동 집필한 국내 첫 SF 단편 모음집이다. 책 제목은 표제작인 신조하의 ‘매니페스토’에서 따왔다. ‘매니페스토’는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과 인류가 공존하는 시대에 인간연합과 외계인연합이 각자의 입장을 담은 선언문을 신문에 기고한다는 내용이다.
작가들은 후기에서 챗GPT와의 협업 과정을 솔직하게 전한다. 소설 작법의 단계를 물으며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어떤 소재를 다룰지 상의하기도 했다. 또 소설의 재료가 될 자료를 조사시키고, 문장을 더 유려하게 만들거나 길게 늘여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작가들에 따르면 완벽한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써 주진 않지만 시놉시스 형태의 얼개를 제공하면 세밀한 묘사나 구체적인 배경 설정을 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줬다는 평가다.
반면 챗GPT는 요구한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내놓거나,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고 작가들은 전했다. 표제작을 쓴 신조하 작가는 챗GPT와의 소설 쓰기를 “눈치 없는 친구와 완성한 음흉한 문장들”이라고 소개하면서 “아무런 욕망이 없는 맑은 영혼, 딱 그 정도의 결과물을 반복해서 제시해 주었다”고 썼다. 구성이 불안정하고, 미묘한 문맥은 살리지 못했다는 게 다수 작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럼에도 챗GPT가 직접 쓴 이 책의 추천사를 읽다보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챗GPT는 추천사에서 “언어 모델로서 저는 사람처럼 감정을 느낄 수는 없지만 재능 있는 작가들과 함께 작업하는 일은 놀라운 경험이었다”면서 “작가와 AI의 협업이 인간들의 창조적인 능력을 더욱 발전시키고, 새롭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적었다.
이 책을 기획·출간한 네오픽션은 “그저 소설일 뿐인 흥미로운 세계로 읽어도 좋고,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는 무서운 경고처럼 읽어도 좋다”면서도 이 책은 “인간다움의 길을 찾는, 인간다움의 가치를 역설하는 작지만 확실한 선언이자, AI와 공존하는 삶을 더는 피할 수 없는 시대에 창작, 문학의 영역에서 고민해야 할 작은 지혜의 시작”이라고 했다.
김미경 (midor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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