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금 내줄 은행 없나요” 높아진 대출 문턱에 발동동
정부의 대대적인 규제 완화에도 지방 청약 시장 침체가 이어지면서 중도금 대출 은행을 찾지 못하는 아파트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미분양이 급증하자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중도금 대출에 필요한 분양률 기준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도금 대출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서 자금 사정이 어려운 중소 건설사와 시행사의 연쇄 부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방 곳곳에서 막힌 중도금 대출
18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대구 수성구 파동 ‘수성레이크 우방아이유쉘’은 작년 2월이 중도금 1차 대출 실행일이었으나, 시행사가 1년이 넘도록 대출해줄 금융기관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일부 분양받은 사람들이 계약 해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단지는 2021년 10월 분양 당시 고분양가 논란에 1.02대1이라는 저조한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분양받은 사람들은 낮은 분양률 탓에 은행권에서 중도금 대출을 거절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입주예정자협의회가 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 확인한 분양률은 지난 1월 기준 40%대 수준에 그쳤다.
통상 선분양 아파트는 분양 대금을 계약금 10%, 중도금 60%, 잔금 30% 정도로 나눠서 낸다. 중도금은 분양 대금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크기 때문에 분양받은 사람이 집단 대출로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행사들은 분양이 시작되고 나서 금융권과 집단 대출 협약을 맺고, 분양받은 사람들은 해당 금융사에서 대출받는 구조다. 보통 분양 5~6개월 뒤 1차 중도금 대출을 실행하고, 3~5개월 간격으로 나머지 중도금을 내게 된다.
작년 하반기 분양한 단지들은 올해 1분기 중도금 납부 시기가 차례로 도래했지만, 대출해줄 금융회사를 찾지 못해 중도금을 내지 못하는 단지가 늘고 있다. 작년 8월 분양한 충남 아산시 권곡동 ‘아산 한신더휴’는 지난 1월이 1차 중도금 납부 예정일이었으나, 아직 대출 은행을 구하지 못했다. 작년 10월 분양한 아산시 배방읍 ‘엘리프 아산탕정’도 1차 중도금 대출 실행일을 3월에서 5월로 미뤘고, 대전 유성구 학하동 ‘포레나 대전학하’도 3월에서 6월로 연기했다.
이처럼 중도금 대출 은행을 찾기 어려워진 것은 작년 하반기부터 미분양이 급증하면서 은행권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중도금 대출 승인 때 요구하는 분양률을 대폭 높였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작년 6월 2만7910가구였던 전국 미분양 주택 수는 지난 2월 말 7만5438가구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청약 시장이 호황이었던 2020~2021년에는 분양률이 50% 수준이면 무난하게 중도금 대출이 승인됐고, 초기 분양률이 30%에 그치더라도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중도금 대출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5대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단위 농협과 새마을금고 등은 중도금 대출 승인 분양률을 70% 수준으로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분양률이 70% 이하이면 준공에 실패하거나 공기가 지연돼 대출 연체율이 치솟고 손실이 커질 수 있다고 판단해 중도금 대출 문턱을 높인 것이다. 실제 대구 소재 새마을금고 지점 12곳은 지역 중견 건설사 다인건설의 오피스텔 사업장에 집단 대출을 내줬지만, 건설사가 자금난으로 공사를 중단하면서 동반 부실 우려에 휩싸였다.
◇중소 건설사 연쇄 도산 우려
전문가들은 중도금 대출이 계속 막힐 경우 돈줄이 마른 중소 건설사와 시행사가 줄줄이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중도금 대출을 실행하지 못하면 자금 여력이 없는 시행사가 시공사에 공사비를 제때 지급하지 못해 공사가 중단되거나, 연쇄 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중견·중소 건설사 단체인 대한주택건설협회는 현재 대출 금액의 80% 수준인 HUG(주택도시보증공사)와 HF(한국주택금융공사)의 중도금 대출 보증 비율을 높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형범 대한주택건설협회 주택정책부장은 “HUG나 HF의 보증 범위가 개선되면 은행권에서 요구하는 분양률이 지금보다는 낮아질 것”이라며 “미분양이 집중된 지방 주택 시장에 인센티브를 부여해 지역 경제와 부동산 시장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