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회의 행로난] 무너지는 법치, 인기 높은 ‘흑영웅’
우리 사회는 엄연한 법치주의 사회다. 그럼에도 ‘흑영웅(dark hero)’의 인기는 늘 높다. 며칠 전 종영된 드라마 <모범택시Ⅱ>만 봐도 그렇다. 공권력조차 휘하에 둔 악의 세력을 흑영웅이 통렬하게 징벌한다는 내용이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흑영웅은 “악은 악으로, 폭력은 폭력으로 제압한다” 같은 세계관을 신봉한다. 하여 악을 징벌하는 데 범법 같은 나쁜 방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선과 악이 공존하는 셈이다.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안겨주는 영웅이지만 마냥 칭송하기에는 꺼림칙한 이유다.
그럼에도 대중은 흑영웅을 반긴다. 오늘날만 그런 게 아니다. <사기>를 쓴 사마천은 ‘유협’이라는 흑영웅의 열전을 기술했다. 그에 의하면 유협은 말에는 신의가 있고 자기 몸을 던져 남의 어려움을 풀어준다. 남을 도울 때 법규를 어기기도 하지만 사람 자체는 의롭고 깨끗하며 겸손한 인격의 소유자다. 그들은 파당을 짓고 힘을 앞세우며 사적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를 증오했다. 축재를 하고 연약한 이들을 함부로 대한다거나, 대놓고 욕망을 탐하며 쾌락을 즐기는 행태도 몹시 부끄러워했다. 남을 도울 때면 힘없는 평민을 늘 우선순위에 두었다.
그러니 사회적 약자인 평민에게 유협은 영웅 자체였다. 사마천이 보기에 ‘평민의 영웅’ 유협은 어느 시대든 항상 있었다. 역사를 보니 사람은 우환을 겪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우환 중 상당수는 자기 잘못 때문이 아니라 기울어진 사회구조나 ‘사회적 갑’의 불법적 행위에 의해 야기되었고, 그러한 우환일수록 공적 차원에서 구제되지 않은 적이 많았다. 특히 평민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그럴 때면 임금도, 국법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러할 때 누군가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주니 그를 영웅으로 여김은 인지상정이었다.
법치주의가 없던 과거에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음에도 우리 현실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로도 모자라 “유검무죄, 무검유죄” 현상까지 더해지고 있다. 법치가 무너지고 있음이다. 사회적 강자 앞에 맥 못 추는 법에 대한 대중의 깊은 불신이 심화되고 있다. 흑영웅의 인기가 여전히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4·19혁명 63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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