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골담초 꽃밥

김재원 동화작가 2023. 4. 1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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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서운암에 놀러 갔다가 골담초 꽃을 보았다.

골담초 꽃은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밥에 넣어 먹고 막걸리 잔에도 띄워 마신다.

밥에 넣으면 골담초 꽃밥, 막걸리에 넣으면 골담초 막걸리, 그 밖에도 골담초 라면, 골담초 녹차, 골담초 커피 등, 다양한 변신이 가능하다.

원래 골담초는 시골에서 오래전부터 뿌리를 캐어 약초로 썼지만 나는 꽃을 감상하고 먹는 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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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동화작가

어느 봄날 서운암에 놀러 갔다가 골담초 꽃을 보았다. 노란 나비 같기도 했고 노란 버선이 매달려 있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모습이 그렇게 앙증맞을 수가 없었다. 검색해 보니 꽃도 이뻤지만 관절 건강에 좋은 약초였다.

시골집을 사면 골담초를 꼭 심고 싶었다. 범초산장을 만든 뒤에 골담초를 심으려고 해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무 시장에 가봐도 없고 꽃시장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 말고는 이걸 찾는 사람이 없단 말인가?’

애써 찾다가 석대 화훼단지에서 겨우 두 포기를 구했다. 그날 대중교통을 타고 갔기 때문에 들고 오느라 땀깨나 흘렸지만 심어 놓고 나니 흡족했다. 묵은 숙제를 해결한 기분이었다.

이듬해 봄부터 노란 꽃이 화사하게 피어났다. 한두 송이가 아니라 수백 수천 송이가 무더기로 피었다. 바람이 불면 노란 꽃 파도가 넘실거렸다. 바로 그 옆에 심어 놓은 서부해당화까지 만개해 보잘것없던 산장이 꽃축제장으로 변했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는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다. 노란 꽃물결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에도 어느새 노란 꽃물이 들었다. 세상이 시끄럽고 뒤숭숭해도 이 순간만은 한없이 평화로웠다. 가진 것이 부족하면 어떻고 낮은 자리에 있으면 어떻겠는가?

꽃이 나에게 넌지시 일러주었다.

네가 가진 열정을 한때나마 불사를 수 있다면 태어난 보람이 있다. 능력이 있든 없든 최선을 다해 꽃을 피워라!

골담초 꽃은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밥에 넣어 먹고 막걸리 잔에도 띄워 마신다. 밥에 넣으면 골담초 꽃밥, 막걸리에 넣으면 골담초 막걸리, 그 밖에도 골담초 라면, 골담초 녹차, 골담초 커피 등, 다양한 변신이 가능하다.

원래 골담초는 시골에서 오래전부터 뿌리를 캐어 약초로 썼지만 나는 꽃을 감상하고 먹는 것으로 만족한다. 뿌리가 튼튼해야 꽃을 많이 피우기 때문에 아예 뿌리는 손대지 않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골담초 꽃이 한꺼번에 다 피는 것이다. 일제히 피지 않고 몇 송이씩 오래 피면 좋을 텐데 일주일쯤 피었다가 다 시들어 버린다.

그러고 나면 다시 골담초 꽃을 볼 때까지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아쉽지 않았다. 노란 꽃이 워낙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기 때문에 마음속에 그 멋진 모습을 담아 놓고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 있었다. 노란 꽃이 떨어지고 나면 거무스름한 줄기와 초록색 잎만 남는다. 가을까지 그 모습으로 있다가 다시 봄이 되면 노란 꽃을 피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봄을 더 손꼽아 기다린다. 샛노란 꽃을 볼 수 있는 봄이기에.

골담초 꽃이 한때만 반짝 피었다가 금방 지는 것을 보고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자녀도 마찬가지겠지. 아들 딸이 어릴 때는 얼마나 귀여웠던가! 곰실곰실 기어다니고 방긋방긋 웃던 모습은 한 송이 꽃이었다. 노란 꽃은 저리 가라였다.

그렇던 애들이 어느 사이에 훌쩍 커서 떠나버리면 자주 볼 수 없다. 봄철 한때 화려하게 피었던 골담초 꽃을 생각하며 일 년을 참고 기다리듯이 아들 딸도 꽃이었던 시절을 생각하며 소식이 없어도 기다려야 하는구나!

어찌 자녀뿐이겠는가! 부부도 그렇겠지. 화양연화와 같은 시절이 있었다면 그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며 인생의 황혼기에도 정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누구라도 나에게 잘해 준 때가 있으면 기억 속에 오래 저장해 두어야 하리라. 간혹 서운할 일이 있으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때를 떠올리며 웃음 지어야 할 거고.


여태까지는 골담초 꽃을 일주일만 따 먹었는데 올해는 한 소쿠리 따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그랬다가 골담초 꽃이 그리우면 몇 송이 꺼내어 밥에 올리고 찻잔에도 띄울 생각이다. 물론 골담초 가지에 붙어 있던 그 생생한 맛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추억을 음미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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