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10] 복수 드라마 전성시대
도둑이나 살인자를 결코 무서워해서는 안 돼. 그건 외부의 위험일 뿐이며 조그마한 위험이야. 우리가 두려워할 건 우리 자신이야. 편견이야말로 도둑이야. 악덕이야말로 살인자야. 큰 위험은 우리 내부에 있지. 우리의 머리나 지갑을 위협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실로 우리의 영혼을 위협하는 것이야. 위험이 다가온다고 생각될 때는 다만 기도하면 돼.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형제가 우리 때문에 죄를 범하지 않도록 기도를 드리기만 하면 돼. -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중에서
분노와 복수를 미화하는 영화, 드라마가 인기다. 주연과 조연 구분 없이 욕설을 대사마다 후렴처럼 붙이며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고 싸운다. 죄책감 없이 마약을 하고 주먹과 칼을 휘두르며 남을 괴롭히고 온갖 비행을 일삼는다. 그 후 피해자는 폭력과 살인을 계획, 사주하고 가해자를 파멸시킨다. 시청자는 통쾌한 복수라며 환호한다.
사법이 불공정해 보일수록 대중은 사적 복수에 공감한다. 상대적으로 작은 죄를 지은 사람은 큰 벌을 받는데, 어떤 사람들은 큰 죄를 짓고서도 별별 특권을 누리며 세상의 주인공처럼 살아간다. 나쁜 짓을 잘 할수록 떵떵거릴 수 있다는 인식이 굳어지면, 악을 모방하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인간의 정의감은 사적 제재가 유일한 해법이라 믿는다. 피해자의 감정에 몰입한 관객은 저마다 사형선고를 내리고 가해자를 해치는 또 다른 가해자 즉, 살인자, 폭력 집단, 킬러 편에 선다. 하지만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 생각한 사람을 죽이는 것도 엄연한 범죄다.
장 발장의 도둑질을 용서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한 비앵브뉘 주교는 산적이 출몰하는 산골 마을에 간 적 있다. 위험하다고 모두가 말렸지만 주교는 소임을 무사히 마친 뒤 산적에게 선물까지 받아 들고 내려온다. ‘무서운 건 산적이 아니라 영혼을 파괴하는 편견과 악덕’이라 말한 주교는 장 발장을 변화시키고 그 결과, 그를 집요하게 쫓던 자베르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얼마 전 강남 한복판에서 여성이 납치돼 살해당했다. 투자 손실에 대한 보복으로 드라마처럼 살인을 사주, 청부한 사건이었다. 선과 악은 우리의 선택을 기다린다. 그러나 착하게 살면 바보가 된다며 우리는 너무 자주 원한과 복수에만 눈과 마음, 시간과 열정을 할애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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