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역사를 기억하는 법

이종섭 기자 2023. 4. 1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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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는 것은 배반이며 죄책을 부인하는 것은 재범을 의미한다. 난징대학살의 역사는 우리에게 역사를 마음에 새기고 과거를 잊지 않으며 평화를 소중히 여기라고 경고한다.”

이종섭 베이징 특파원

중국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시 ‘중국 침략 일본군 난징대학살 희생 동포 기념관(侵華日軍南京大屠殺遇難同胞紀念館·난징대학살기념관)’ 내 역사 전시관에 쓰인 문구다. 난징대학살기념관 내 역사 전시관에는 희생자들의 신상 기록 등이 담긴 파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일본군의 만행과 학살의 참상을 기록한 문건과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그리고 전시관의 문을 나서기 전 마주하게 되는 것이 바로 벽면에 적혀 있는 이 맺음말이다.

지난 11일 찾은 난징대학살기념관에는 평일임에도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난징대학살은 1937년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국민당 정부의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한 뒤 민간인을 대량학살하고 강간과 방화 등 전쟁범죄를 저질렀던 사건이다. 당시 희생자는 30만명으로 추산된다. 중국은 침략과 폭력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1985년 다수의 희생자 유해가 발굴된 장소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념관을 세웠다.

기념관 전체 면적은 13만㎡로 축구장 18개 이상 크기다. 기념관 내부에 희생자 유해 발굴 장소를 보존하고 각종 사료들을 모아 학살의 참상을 알리고 있다. 기념관에는 일본군의 위안부 제도와 성범죄 행위를 고발하는 전시관도 마련돼 있다. 중국은 1997년 이 기념관을 전국 최초 애국주의 교육 시범기지로 정하고 2008년에는 최초 국가 1급 박물관으로 지정했다. 또 2014년에는 대학살이 시작된 12월13일을 국가기념일(추모일)로 지정해 매년 국가 차원의 추모행사를 열고 있다. 역사를 기억하려는 노력이다.

기념관을 둘러보는 내내 비슷한 역사적 아픔을 가진 우리의 상황을 떠올렸다. 정부는 반발 여론 속에서도 지난달 한·일관계 개선을 이유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일본 피고기업 대신 국내 재단이 배상을 하도록 하는 ‘제3자 변제안’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인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고, 오히려 역사왜곡을 강화한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대국민담화 형식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과거는 직시하고 기억해야 하지만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친구관계에서 서먹서먹한 일이 생기더라도 계속 만나 소통하면 오해가 풀리고 관계가 복원되듯이 한·일관계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전범국가와 피해국 사이에 얽혀 있는 역사적 문제를 친구 사이의 다툼 정도로 치부하는 역사인식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달 초 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전임 도지사 때 추진했던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을 백지화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국내에서는 민간단체 주도로 평화의 소녀상이나 강제징용노동자상을 건립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과거사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난징대학살기념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역사는 역사이고 사실은 사실이다. 시대가 변해도 역사는 달라지지 않으며 사실은 부인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올해는 조선인 수천명이 일본에서 무참히 살해된 관동대학살 100주년이다.

이종섭 베이징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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