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대통령의 무박(無泊) 지방 나들이 유감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2023. 4. 19. 01:1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기본이 당일치기 일정
신기록은 문 대통령이 보유
부산 가덕도 방문 때 2시간 체류
지역민과 소통 갈수록 줄어
윤 대통령은 하루씩 묵어 보라
비공식적 스킨십 정치 늘려야

졸지에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식당이 하나 있다. 부산 해운대 소재 ‘일광수산횟집’이라는 곳이다. 지난 6일 부산에서 중앙지방 협력회의를 주재한 윤석열 대통령이 엑스포 실사단 환송 만찬에 잠시 들른 다음, 장관·지사들과 함께 비공식 저녁 식사 모임을 한 장소다. 이와 관련된 야권발(發) 가짜 뉴스는 너무나 황당하여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차제에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은 만찬 이후 대통령의 현지 숙박 여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부산 해운대구의 한 횟집에서 비공개 만찬을 했다. 이 자리에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 등 측근들도 목격돼 인터넷상에서 화제를 모았다. /인터넷 커뮤니티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대통령의 지방 나들이는 당일치기가 기본처럼 되고 있다. 대통령이 지방에서 하룻밤을 보낼 경우 언론이 ‘1박 2일’ 일정이라 눈에 띄게 보도하는 것을 보면 최근 부산행에서도 숙박은 없었던 모양이다. 대통령이 지방 행사에 시간을 얼마나 할애할지는 물론 당사자와 관계자들의 판단에 달렸다. 업무상 고려도 있을 것이고 경호상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대통령의 지방 일정 시간이 크게 단축된 것은 분명한 사실로, 이에 대해 한번쯤은 문제 제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옛날에는 대통령이 지방에서 투숙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아예 대통령이 특정 호텔을 애용하기도 했다. 충청도에서는 유성호텔이나 만년장이 대표적이었고, 수성호텔은 박정희 대통령의 ‘대구 별장’이라 할 정도였다. 부산에 갈 때 박 대통령은 극동호텔에 자주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대통령 또한 목포에서 신안호텔을 즐겨 찾았다. 물론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하지 않던 시절이라 대통령의 당일 귀경이 물리적으로 어려웠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대통령이 지방에서 먹고 자게 되면 그곳 주민과 친밀감이 자연스레 생길 수 있다. 생생한 현지 민심 청취는 덤으로 따라올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스토리나 에피소드라도 알려지면 지역 관광이 활성화되기도 한다. ‘1박 2일’이나 ‘삼시 세끼’ 같은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처럼 말이다. 오늘날 사통팔달 고속도로나 고속철도 덕분에 지방의 명문 호텔이 빈사(瀕死) 상태에 빠진 것은 일반 국민은 물론 대통령조차 그곳을 이용하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가끔씩 대통령이 일부러라도 숙박하면 그 자체가 지방의 존재감을 높이는 기회다.

과문한 기억에 대통령의 초단기 지방 방문 일정 기록은 문재인 대통령이 보유하고 있는 듯하다. 2021년 2월 25일, 가덕도 신공항 건설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그가 부산에 머문 시간은 두 시간이었다. 이를 위해 총 2억1500만원이 지출되었는데, 부산시와 울산시, 경상남도 등 인근 지자체들이 부담했다고 한다. 당시 국민 혈세로 부산시장 선거운동을 한다는 비판이 많았고, 야당에서는 “2시간을 위해 2억원을 쓴 쇼통”이라 비난하기도 했다. 좀스럽게 돈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멀리 부산까지 가는 마당에 그렇게 ‘바람처럼’ 왔다 가야만 했는지 묻고 싶을 따름이다.

하긴 대통령뿐이 아니다. 요즘에는 무박(無泊) 지방 나들이가 정치권 전반의 대세다. 예컨대 정당의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 지역 순회 경선을 보노라면 유력 정치인들이 지방으로 우르르 내려갔다가 다시 우르르 상경하는 모양새가 일반적이다. ‘지방화 시대’라는 수십 년째 국정 구호가 무색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집안 경조사 때 서울에서 잘사는 일가친척들이 밀물처럼 내려왔다가 썰물처럼 올라가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나이 든 부모만 다시 고향에 남기고 말이다.

대통령의 지방 방문 일정이 대체로 크게 짧아지면서 지역과 유대가 약해지고 지역민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기회가 줄어들까 염려스럽다. 이는 대통령이 지방 이곳저곳을 늘 바쁘게 이동 중인 것과는 별개 문제다. 대통령이 각 지역이 직면한 삶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접하려면 이른바 ‘숙박형 민생 투어’를 지방행의 또 다른 목적과 방식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의전이나 형식 중심의 각종 행사나 회의, 보고, 참관 등으로는 체감하기 힘든 각 지방의 진짜 속사정이 따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박정희·김대중 대통령의 지역 순방 스타일에는 새삼 배울 것이 많다.

윤 대통령은 가령 인구 감소에 따른 지역 소멸 농촌이나 다민족·다문화 이행 도시, 귀촌·귀농 선도 마을, 폐교 위기 지방 대학 같은 곳에서 하룻밤 정도 직접 묵어 보면 어떨까. 그곳 주민들과 식사도 하고 대화도 나누며 말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절박한 현실이 더욱 실감 날 것이고, 지역 균형이나 지역 발전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 역시 더 진정성 있게 전달될 것이다. 말하자면 비공식적 스킨십 정치의 힘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