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 선상세례·돌림자 신앙·한옥 성당...130년 전 강화도 선교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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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는 210개 교회가 있습니다.”
지난 4일 오전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탐방단이 방문한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 이사장 최훈철 목사님은 로비 벽에 걸린 강화 지도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화도 지도 위엔 작은 점이 빽빽히 찍혀 있었습니다. ‘강화도가 큰 섬이라고 해도 그렇지, 교회가 210개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강화도는 2016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네번째로 큰 섬입니다.) 개신교가 불과 100여년 사이에 지역에서 이렇게 확산한 것은 분명히 남다른 이유가 있었겠지요? 이날 탐방은 그 이유 혹은 비결(?)을 찾아나서는 여정이었습니다.
강화도 210개 교회들은 주로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교)와 대한성공회(성공회) 교단에 속해 있었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초기 선교사들이 선교지역을 겹치지 않도록 나누면서 인천뿐 아니라 강화 지역도 감리교와 대한성공회의 선교지역으로 정했기 때문이었지요.
“인천의 기독교 유적이 ‘처음’이라면, 강화도 기독교 역사 문화의 키워드는 ‘만남’입니다.” 이날 아침 강화도로 향하는 탐방단 버스 안에서 동행한 허은철 총신대 교수는 이렇게 운을 뗐습니다. 한국과 서양이 만나고, 불교 건축과 기독교가 만나고, 양반과 평민이 만나면서 독특한 기독교 문화를 만든 곳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감리교와 성공회, 두 교단이 강화에 정착하게 된 과정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먼저 감리교 선교는 어렵게 시작됐습니다. 외국인 트라우마 때문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강화도는 구한말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라는 외침을 잇따라 겪은 현장입니다. 아펜젤러의 뒤를 이어 인천 내리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던 존스 선교사는 1892년 강화도 선교에 나섰다가 강화유수에게 퇴짜를 맞았답니다. 외세에 대한 거부감은 관리부터 일반 주민까지 뿌리 깊었던 것이지요.
주민 반대로 상륙 못하게 되자 나룻배 위에서 선상 세례
선교는 뜻밖의 계기로 이뤄졌답니다. 강화 출신으로 제물포에서 주막을 운영하던 이승환이란 사람이 내리교회에 출석하게 된 것이지요. 그는 세례를 권유받자 어머니보다 먼저 세례 받을 수 없다면서 1893년 존스 선교사를 강화도 북쪽의 고향 마을로 초청했답니다. 한복으로 변장한 존스 선교사가 마을에 도착했지만 이내 주민들에게 들켰다지요. 이 마을 유지였던 김상임은 이승환에게 “선교사를 들이면 그 집을 불살라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답니다. 그래서 등장한 고육지책이 기발한 ‘선상(船上) 세례’입니다. 마을 땅을 밟지는 못했지만 갯벌에 정박한 나룻배로 찾아온 이승환의 어머니에게 선상에서 세례를 준 것이 교산교회의 시작입니다. 교산교회 앞에는 이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놓여있고, 교회 벽에도 보름달 아래 세례 받는 모습을 그린 벽화가 있습니다.
교인들 ‘한 일(一)’-’믿을 신(信)’ 돌림자로 개명하기도
선상세례로 첫 단추를 꿴 강화 선교는 이후로도 드라마를 방불케하는 역사를 이어갑니다. “집에 불지르겠다”고 윽박지르던 김상임이 회심(回心)해 적극적으로 전도에 나선 것이지요.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바울이 회심해 이방인 전도에 나선 스토리가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또한 홍의교회와 교동교회 초기 신자들은 이름을 바꾸면서 돌림자를 만들기도 했답니다. 홍의교회는 ‘한 일(一)’자를 마지막 글자로 삼아 ‘박능일’ ‘종순일’ ‘권신일’ 등으로 새 이름을 지었답니다. 교동교회 신자들은 ‘믿을 신(信)’자를 돌림자로 삼았다고 하고요.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저는 신앙을 받아들인 교인들이 집단적으로 돌림자를 넣어서 개명(改名)한 이야기는 강화도 교회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새로 태어났다는 뜨거운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마태복음 읽고 ‘빚탕감’...”예수 믿는 사람은 다르다”
마을의 부자였던 종순일은 ‘빚탕감’에 앞장서기도 했답니다. 마태복음 18장 ‘자신은 1만 달란트 빚탕감을 받고도 100데나리온 빚을 탕감해주지 않은 종’ 이야기를 읽은 종순일은 자기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 모은 앞에서 빚문서를 모두 불살랐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르다’는 소문이 퍼지며 복음화는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고 합니다. 종순일은 후에 목사 안수를 받고 1917년 주문도 진촌교회(현 강화서도중앙교회) 목사로 부임했는데, 이 교회 성도들이 목사의 본을 받아 서로 빚을 탕감하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답니다. 역시 ‘삶과 신앙의 일치’만큼 확실한 전도 수단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모범’과 ‘희생’이 강화 복음화의 비결이었던 셈이지요. 또한 이런 뜨거운 신앙은 독립운동과 교육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감리교와 강화도의 만남이 격렬했다면 성공회와 대면은 부드러웠습니다. 조선왕실이 1893년 강화도에 일종의 해군사관학교인 통제영학당을 설립하면서 영국인을 교관으로 초빙했답니다. 그러자 영국 해군 군종 장교가 자연스럽게 함께 강화도에 들어오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통제영학당은 1년만에 폐쇄됐답니다. 청일전쟁을 이기고 조선에 대한 침략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한 일본의 요구 때문이었다지요. 그렇게 통제영학당은 문을 닫았지만 성공회 선교는 이어졌지요.
한옥 성당...건물부터 친근하게 다가선 성공회
성공회는 강화도에서 토착화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강화읍성당은 한옥 성당으로 유명하지요. 강화읍성당은 우선 건물 자체가 가로 10칸, 세로 4칸, 즉 40칸짜리 한옥입니다. 집은 한옥인데 사용법(?)이 다릅니다. 궁궐이나 사찰, 혹은 민간의 한옥은 가로로 긴쪽을 정면으로 삼고 문을 냅니다. 그렇지만 강화읍성당은 4칸짜리 옆면에 정문을 냈습니다. 출입구 위엔 ‘天主聖殿(천주성전)’이란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서양 성당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사찰 법당이 보는 사람 시선에선 가로로 길게 펼쳐지며 전면에 여러 불상이 놓여있는 일종의 ‘파노라마’ 구조라면, 성당 건물은 입구에서 제대까지 긴 복도로 연결되면서 집중되는 ‘소실점’ 구조입니다. 강화읍 성당은 건물은 한옥이지만 구조는 서양 성당식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한 곳으로 모읍니다. 시선의 초점이 모이는 제대 뒷편엔 ‘萬有眞原(만유진원)’이란 글씨가 걸려 있지요. ‘천지만물을 창조한 참 근원’이란 뜻입니다.
요한복음 적은 종, 인도서 가져온 보리수도
또 입구 앞 세례대에는 ‘重生之泉’이라 적혀 있습니다. ‘(크리스천으로)다시 태어나는 샘’이란 뜻이지요. 그뿐 아니라 출입구 기둥에는 ‘무시무종선작형성진주재(無始無終先作形聲眞主宰·처음도 끝도 없으니 형태와 소리를 먼저 지은 분이 진실한 주재자이다) ‘삼위일체천주만유지진원(三位一體天主萬有之眞原·삼위일체 하느님은 만물을 주관하시니 참 근본이 되신다)’ 등의 내용을 한자로 적은 주련(柱聯)도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겉면에 새긴 종(鐘)도 있지요.
이렇듯 강화읍성당에는 한자 문화와 유교·불교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눈에 띕니다. 성당에 이르는 길 자체도 산사(山寺)를 연상케 합니다. 언덕 아래에서 문 두 개를 통과해 계단을 오르면 성당을 만나게 됩니다. 성당에서는 두 개의 문을 각각 ‘외(外) 산문(山門)’ ‘내(內) 산문’이라 부른답니다. 그 문들에 금강역사나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없다 뿐이지 사찰 입구와 흡사합니다. 성당 뜰 왼쪽에는 잘 자란 보리수도 한 그루 서있습니다. 1900년 트롤로프 선교사가 인도에서 당시 10년 된 보리수나무를 가져와 심었답니다. 보리수나무는 보통 불교를 상징하지요. 나무 한 그루까지도 한국인에게 친숙한 것을 심은 배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화읍성당 관할 사제인 이경래 신부는 “강화읍성당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유소년 축구 발상지...훈련 받으면 잉글랜드 리그 진출도 가능”
성공회 선교사들 역시 강화도에 근대 문화를 선물했지요.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에는 재미있는 사진 한 장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영국인 브라이들 선교사를 중심으로 소년들이 모여 있는 사진인데 제목이 거창합니다. ‘유소년 축구의 발상지 강화’입니다. 브라이들 신부는 영국 성공회 선교지(誌)인 ‘모닝 캄’에 자신이 지도한 축구교실 이야기를 보고했는데요, ‘선수들이 좀더 체계적인 훈련을 받는다면 잉글랜드 리그 진출도 가능하다’고까지 적었다네요.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은 강화도 내 7개 코스로 나눠 순례코스도 만들었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문의해보시고 참가하시는 것도 유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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