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보다 비싼 ‘재생에너지용 전기 요금’…RE100의 걸림돌 되나
24시간 공장 가동하는 반도체·석유화학 등 가격 경쟁력 저하 우려도
제도 도입 2년간 계약 7건뿐…전문가들 “정부가 나서서 문턱 낮춰야”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부터 전력을 구매하는 기업에 적용하는 ‘직접 전력거래계약(PPA)’ 요금제 도입을 두고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PPA 요금제가 산업용 전력 요금제에 비해 비싸 기업들이 반발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도입 실적이 저조했던 PPA 제도가 이번 요금제 도입으로 더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환경단체는 PPA 요금제가 자칫, 재생에너지 확대를 막는 장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18일 한국전력에 따르면 PPA 요금제 도입이 담긴 ‘기본공급약관 시행세칙 개정안’ 시행이 6월30일까지 유예됐다. 올 1월 도입 예정이었던 PPA 요금제는 기업 등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을 이유로 4월로 한 차례 미뤄진 이후, 또 연기된 것이다. 한전은 “합리적인 요금 적용을 위해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유예기간을 연장했다”고 설명했다.
PPA는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생산된 전기를 기업이 직접 구매하는 제도다. 2021년 PPA 도입 이전까지는 기업이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된 전기만 따로 구매할 수 없어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고 싶어도 한계가 있었다. 이제 PPA는 2050년까지 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RE100’의 주요 이행 수단으로 꼽힌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한전이 ‘PPA 요금제’를 발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기본요금이 kWh당 9980원으로 산업용(6630원)보다 50.5%나 높고, 재생에너지를 1%만 쓰는 사업자이더라도 PPA 요금제가 적용된다는 내용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를 통해 구매하는 전력이 부족한 경우는 한전으로부터 나머지 전력을 사야 하는 사업자들은 높은 PPA 요금제를 적용받기 때문에 말 그대로 ‘요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
게다가 산업용 전기요금보다 경부하 시간대(전기 소비가 적은 오후 10시∼오전 8시) 요금이 높다는 점도 기업에는 부담이다. 반도체와 석유화학 등 수출 주력산업 대부분이 24시간 공장을 가동하는 업종인 점을 고려하면 수출 경쟁력 저하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PPA 요금제 도입 소식이 전해지자 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중견 제조업체는 전기요금만 연간 10억원, 대기업의 경우에는 60억∼100억원 더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PPA 요금제의 적용 기준을 합리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RE100’ 참여 기업과 협력사 321개사를 대상으로 PPA 요금제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28.3%는 ‘심각한 악영향’이, 48.1%는 ‘부정적 영향’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한전은 PPA 전용 요금제 도입을 고수하고 있다. 기업이 PPA 계약을 맺더라도 실제 전기를 공급하려면 기존 송·배전망을 이용해야 하는 만큼 이에 따른 유지·보수 부담을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전은 “(송·배전망 건설·운영 등에 필요한) 고정비는 기본요금과 함께 일부를 (고객 기본료 부담 완화를 위해) 전력량 요금을 통해 회수하고 있다”며 “PPA 고객은 한전에서 공급하는 전력 사용량이 적어 고정비를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므로 기본요금을 높이고 전력량 요금을 낮추는 방식으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양측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PPA 요금제 도입 여파로 시장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PPA 제도가 도입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이미 높은 비용으로 인해 지난 3월 기준, 계약 체결건수는 7건으로 현대엘리베이터와 네이버 등 소수의 기업만 참여하고 있다. 이마저도 2건은 계약만 체결됐을 뿐 전력 공급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환경단체인 기후솔루션이 한전에서 부과하는 망 이용료 등 부대비용을 고려해 추산한 결과, PPA를 통한 기업의 전력 구매단가는 1kWh당 태양광이 176원, 풍력은 205원에 달했다. 이는 산업용 전기요금(1kWh당 107원)보다 각각 164%, 191% 높은 금액이다. 기후솔루션은 “기업의 RE100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서 재생에너지 PPA가 활성화돼야 하는 시점에서 한전이 부과하는 망 이용료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PPA 도입이 어려워지면 기업들은 RE100 달성을 위해 직접 태양광·풍력 발전소를 짓거나, 한전에서 전력을 살 때 웃돈을 내면 재생에너지를 사용한 것으로 인정받는 ‘녹색 프리미엄’ 제도를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간접적인 방식인 데다, 이행실적도 불분명해서 ‘그린워싱 논란’이 뒤따른다. 최근 애플, BMW 등 기업은 한국 협력사에 녹색프리미엄 사용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
이에 대한상의는 PPA 계약을 체결한 중소·중견기업이 한전에 내는 사용료를 1년간 전액 지원하는 사업을 시행하는 등 자체적인 지원책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결국 정부가 의지를 갖고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경락 플랜 1.5 활동가는 “전기차 도입 당시만 보더라도 정부는 보급 확산을 위해 파격적인 요금 혜택 등을 부여했다”며 “재생에너지 활성화를 위해서 높은 진입 문턱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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