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안팎 악재에 시달리는 김기현, 정순택 대주교 찾아 마음 다잡아
윤석열 대통령의 당내 최측근 그룹인 ‘윤핵관’들과 대통령실의 지원 사격 끝에 당권을 거머쥐었으나 당 안팎의 악재와 본인의 판단 잘못이 겹쳐 당 지지율 하락세에 직면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를 예방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18일 국민의힘과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김 대표는 이날 서울 중구 명동 서울대교구청 교구장 접견실에서 정 대주교를 만나 30여 분간 환담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천주교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망이 되는 점들을 정치에서도 본받아야 하는데 이게 잘 안될 때가 많다”며 “천주교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망을 주고 빛이 돼주는 역할을 보여주셨다. 저희도 가야할 지향점, 가야할 좌표를 잃어버리면 안 되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부활절 (정순택) 대주교 메시지가 각자 주인공인 삶에서 상호존중하기보다 분자화, 고립화되는 게 안타깝다는 말씀을 주신 걸로 안다”며 “저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말씀이었다. 소셜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사회공동체에 대한 인식이 약화되고 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희생정신과 박애를 잘 되새기겠다”고 강조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반목하고 비난과 싸움만 일삼는 여야 정치권의 행태와 함께 국정과 민생을 책임져야 할 집권여당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 반성하고 김 대표 자신부터 달라지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김 대표가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윤석열정부의 성공 여부에 최대 분수령이 될 내년 총선을 1년 앞두고 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 모두 처참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강성 지지층의 덫에 걸린 데다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논란까지 터졌음에도 반사이익조차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과정에서 드러난 검찰 출신 중심의 부실한 인사검증시스템과 근로시간 졸속 개편 논란, 대일 외교 실책, 미국의 도감청에 대한 헛발질 대처 등 대통령실과 정부의 자책골 탓도 크지만 국민의힘 잘못도 만만치 않다.
김재원 최고위원이 ‘극우 성향’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가 우파의 천하 통일을 이뤄냈다고 칭송하는 설화를 빚고, 전 목사는 한술 더 떠 국민의힘 총선 공천권 폐지까지 요구하는 등 당 안팎 인사가 국민 다수의 상식과 거리가 먼 행태를 보인 게 대표적이다. 김 대표의 언행 주의 당부에도 북한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최고위원 등 당내 주요 인사가 잇따라 논란이 될 주장이나 실언을 하고, 김 대표가 전 목사와 대립하던 홍준표 대구시장을 먼저 당 자문위원에서 해촉한 반면 전 목사에겐 뒤늦게 강경 목소리를 낸 것도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당은 친윤(친윤석열) 일색으로 재편됐지만 정치력 부재와 정책 주도권 상실 등 무능력한 모습만 노출하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한 부활 메시지를 언급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어떤 사람이든 차별받거나 자신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인권과 민주주의를 온전히 존중해 사회적인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하는 정치를 펼쳐달라’고 말씀하셨다”며 “종교를 떠나 귀감이 될만한 말씀”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비공개 환담에서 정 대주교는 “지난 12일 수요 일반 알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 세계 정치지도자들이 성 요한 23세 교황의 회칙 ‘지상의 평화’를 참조하면 좋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를 이루려면 자신의 권리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권리도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하고,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지성의 빛과 성실한 협력으로 같이 대화를 모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소개하면서 “우리 국내 정치 상황 속에서도 이 말씀을 깊이 새기시면서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 참고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이날 자리에는 국민의힘에서 강민국 수석대변인, 구자근 당 대표 비서실장, 김상훈 국회 가톨릭신도의원회장, 양금희 의원이, 서울대교구에서 정영진 신부(사무처장), 최광희 신부(문화홍보국장) 등이 배석했다.
앞서 김 대표는 지난 3월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도 예방했다. 김 대표는 개신교, 원불교 등 다른 종교 지도자도 차례로 예방할 계획이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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