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건축왕’ 피해자 잇단 극단 선택..정부 ‘사기 매물’ 경매중단
‘인천 건축왕’으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또 다른 청춘이 17일 숨진 채로 발견됐다. 불과 2개월 사이 3번째 피해자다.
안타깝게 숨진 피해자들은 모두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정부의 대책이 겉도는 사이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늘어만 갔다.
이러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18일 최근 전세 사기 피해자 3명이 잇따라 숨진 것과 관련 부동산의 경매 일정을 중단하는 방안을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경매 일정의 중단 또는 유예 방안을 보고받은 뒤 이를 시행하도록 했다고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러한 민사 절차상의 피해 구제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이 대부분인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구제 방법이나 지원 정책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며 “찾아가는 지원 서비스 시스템을 잘 구축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이 대변인은 전했다.
최근 20∼30대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최근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운데 피해매물의 경매 중지가 시급하다는 피해자들의 주장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경매가 진행돼 낙찰되면 강제 퇴거가 불가피하다며 경매 중단을 지속해서 촉구해 왔다.
피해자 대책위는 지난해 11월 출범 직후부터 “경찰 수사가 끝나지 않아 민사소송도 어려운 상황에서 경매가 진행된다면 피해자들은 강제 퇴거가 불가피하다”며 피해 세대의 경매 중지·연기에 대한 행정명령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가 경매 중지와 관련해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동안 피해 세대는 하나둘 경매에 넘어갔다.
대책위 측은 대책위 미가입자까지 고려하면 전체 피해 세대 3079세대 중 2083세대(67.6%)가 경매에 넘어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대책위가 무작위로 431세대를 대상으로 자체 조사한 결과, 132세대(30.6%)는 전셋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일정 금액의 보증금을 보장받는 최우선변제 대상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최우선 변제금 기준 변경’ 여부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지금 3억짜리 빌라가 있어도 이것 떼고, 저것 떼면 도저히 보증금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그런 상황이 어려워지니 극단적 선택을 하는 분들도 있다”며 “그렇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고 답했다.
이어 “대통령이 말한 ‘찾아가는 지원 서비스’는 (구제) 방법 자체를 몰라서, 또 찾아갈 여력도 되지 않아 어려움에 처한 분들이 많기에 복지시스템을 가동해, 피해자가 찾아오지 않아도 통계를 살펴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먼저 피해자를 찾거나 하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전세사기 사건과 관련해 주범인 이른바 ‘건축왕’의 30대 딸도 ‘바지 임대인’으로 범행에 가담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날 경찰 등에 따르면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수사1계는 사기 등 혐의로 건축업자 A(61)씨의 딸 B(34)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B씨에게는 사기뿐 아니라 공인중개사법 위반과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도 함께 적용됐다.
B씨는 지난해 인천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 등 공동주택 161채의 전세 보증금 125억원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아 가로챈 아버지의 범행에 일부 가담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경찰은 B씨가 이번 전세사기 사건의 공범으로서 아버지에게 명의를 빌려줘 바지 임대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B씨는 인천시 미추홀구에 있는 오피스텔형 아파트를 자신의 명의로 보유했다. 그의 이름을 딴 이 아파트는 2013년 아버지가 직접 신축한 건물이다.
이 아파트 중 일부는 벌써 지난해 임의 경매(담보권 실행 경매)에 넘어갔으나 유찰됐고, 다음 달에 경매가 다시 진행될 예정이다.
미추홀구 전세 사기 피해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B씨는 인천에서 공인중개사 대표로 활동했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종합건설 업체 대표를 맡기도 했다.
또 과거에 커피전문점과 유통업체를 운영하는 등 아버지와 유사하게 각종 사업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번 건축왕 전세 사기 사건과 관련해 B씨 등 공범 51명을 추가로 수사하고 있으며 이들도 조만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추가 수사 결과 A씨 일당 전체의 전세 사기 혐의 액수는 경찰이 수사 초기에 추정한 266억원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며 “추가로 수사 중인 피의자들의 혐의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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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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