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에 깊어진 불신…중개사들 “계약은 없고 싸움 말리는 게 일”
보증보험 가입 증가…“새 세입자 못 기다려”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늘어
직장인 A씨(46)는 지난달 자신이 살던 경기 평촌의 투룸 아파트 전세를 내놓았다가 공인중개사무소에서 말다툼을 벌였다. 임차인이 A씨의 세금 체납내역을 요구하는가 하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반환보증이 나오지 않을 시 계약을 무효로 하고, 위자료를 지불할 것을 특약사항으로 명시해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공인중개사가 임차인에게 “A씨는 직장 문제로 실거주하던 집을 내놓는 것이고 (집을 사느라 받은) 대출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돌아온 답은 “공인중개사는 집주인 편 아니냐”는 말이었다. 최근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전세사기’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전세사기와 관계없는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이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18일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서 20년 넘게 공인중개업을 해온 B씨에 따르면 최근 중개사들은 ‘계약은 없고 싸움 말리는 게 일’이 됐다고 한다.
정부가 전세사기 예방대책으로 지난 1일부터 보증금 1000만원을 초과하는 임대차계약에서 임대인의 동의 없이도 세무서장이나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미납세금 열람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면서 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종종 말다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B씨는 “임차인 입장에서는 불안하니까 (체납내역을)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데 오랫동안 빌라 한 채 쥐고 살아온 어르신들은 시시콜콜 따지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면서 “내가 오래 봐 온 분(임대인)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요즘은 공인중개사 말은 일단 불신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양천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집주인들이 멀리 사는 경우에는 관리해주는 부동산에서 계약하고 추이만 체크하다가 잔금일에 나타나거나 하는데 지금은 (임차인들이) 임대인이 직접 오지 않으면 무조건 계약 안 한다고 한다”면서 “부동산도 못 믿겠다고 하고, 임대인이 왔는데도 임대인 본인 확인을 해야겠다면서 서로 불신이 심하다”고 말했다.
계약 만료시점에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이 커지면서 HUG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자 수도 매년 늘고 있다.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빌라는 100% 보증보험 가입이 되는지부터 묻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새 세입자가 들어오면 보증금을 돌려준다’는 식의 관행도 바뀌는 추세다. 직장인 C씨(32)는 최근 임대차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으로부터 “새 세입자가 들어오면 보증금을 받아가라”는 통보를 받고 임차권등기명령 신청을 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전·월세 계약만료 시점에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임차인이 관할 법원에 신청해 받아내는 명령이다. 법원 등기정보광장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월평균 870건(누계 1만441건)이던 임차권등기명령 신청건수는 2022년 1181건(누계 1만4175건)으로 늘었다.
류인하·심윤지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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