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양곡법 개정안 시대착오적… 식량 안보에도 도움 안돼” [세상을 보는 창]

주춘렬 2023. 4. 18.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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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평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장
공급 과잉 쌀값 하락 정부가 지지 핵심
시행되면 막대한 재정 부담 등 부작용
단기적 수요확대 한계… 공급량 줄여야
밀·콩 등 전략작물의 과감한 지원 통해
쌀 중심의 농업 구조 균형있게 바꿔야
첨단기술 접목 농업 경쟁력 제고 필요
곡물 자급률 20%… 옥수수·밀 수입 의존
식량 안보 ‘구멍’… 생산량 대폭 늘려야
수급 안정 위해 수입국 다변화 등 중요

문재인정부는 2020년 쌀값 하락 때 손실분의 85%까지 보전해주는 변동직불금제를 폐지했다. 공교롭게도 이듬해 풍년이 들어 쌀값은 20% 이상 떨어졌다. 정치권이 들끓었고 정부의 쌀 매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당시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쌀의 과잉생산과 재정 낭비를 야기한다는 이유로 반대해 법안은 유야무야됐다.

윤석열정부가 출범하자 민주당은 돌변했다. 작년 9월부터 양곡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더니 총선을 1년 앞두고 지난달 본회의에서 과반의석을 앞세워 강행 처리했다. 쌀이 3∼5% 증산됐을 때, 가격이 5∼8% 떨어졌을 때 정부의 쌀 매입을 강제하는 게 핵심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달 초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자 민주당은 재의결에 나섰지만 결국 부결됐다. 이번에는 한술 더 떠 쌀 생산비 보장, 변동직불금제 부활까지 얹은 더 센 대체입법이 등장했다. 양곡법이 여야 간 정쟁거리로 전락한 채 밑도 끝도 없는 소모전이 이어지는 형국이다. 그 사이 농촌에서는 쌀농가와 다른 농민들, 고령농과 청년농 간 갈등이 깊어졌다.
장태평 대통령 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남아도는 쌀을 강제매수하는 건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며 “이념과 진영의 왜곡된 논리에서 벗어나 농업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재문 기자
야당 개정안이 시행되면 농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장태평 대통령 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어업위) 위원장은 “과도한 시장개입이 막대한 재정부담과 미래 농업투자 감소, 형평성 문제 등 많은 부작용을 초래해 결국 한국 농업을 후퇴시킬 것”이라고 단언했다. 장 위원장은 “한정된 예산을 밀과 콩, 옥수수 등 전략작물에 과감하게 지원해 쌀 중심의 농업구조를 균형 있게 바꿔야 한다”며 “또한 첨단기술을 접목해 농업을 경쟁력 있는 신산업으로 변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장 표만 보는 포퓰리즘과 진영논리에 갇혀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며 “5년, 10년을 보는 중장기 발전전략 차원에서 합리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 위원장은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에서 농어촌예산을 짜며 농업과 인연을 맺었다. 이어 농림수산식품부에서 농업정책국장·농업구조정책국장 등을 거쳐 이명박정부 시절(2008∼2010년) 장관을 지냈다. 장관 재직 때 농식품 수출 5개년 계획을 세워 큰 성과를 냈고 한식세계화도 주도했다. 인터뷰는 13일 서울 종로구 농어업위에서 두 시간가량 진행됐다.

―대통령이 양곡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개정안은 쌀값을 지지해 공급량을 늘릴 텐데 거꾸로 가는, 시대착오적 정책이다. 쌀값이 떨어지면 공급량을 줄이든지 수요를 확대해야 한다. 1∼2년 사이에 수요를 늘리기는 어렵고 공급을 줄여야 한다. 당장 올해가 걱정이다. 정부가 지난해 2조원 가까이 들여 90만t을 시장 격리했는데 올해 20만t 정도 더 매수하면 110만t까지 불어난다. 지난 20여년간 관세 유예화 탓에 해마다 연간 41만t을 수입해야 하는데 보관창고가 가득 차 야적하는 사태까지 벌어질 판이다. 큰 재앙이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쌀 품질이 저하돼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개정안 시행 때 올해부터 2027년까지 평균 1조원의 세금이 사라진다. 야당의 주장은 당장 급하니 가격을 떠받치자는 건데 마약과 다르지 않다. 공급과잉인 쌀에 대한 과도한 재정지원은 청년농·스마트팜 등 미래농업을 위한 투자를 막고 다른 작물과의 불균형도 심화시킬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거부권 행사에 대해 “식량 안보전략의 포기 선언”이라고 비판하는데.

“오히려 개정안이 식량 안보를 해친다. 현재 곡물 자급률은 20% 정도다. 쌀은 과잉이지만 옥수수와 밀은 1%를 밑돌아 대부분 수입한다. 식량 안보에 구멍이 난 거다. 부족한 작물의 생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 식량 안보는 생산이 아니라 소비 측면에서도 바라봐야 한다. 위기 때 밀과 옥수수 수급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장기계약을 맺고 수입국도 다변화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가 대안으로 농업직불금 확대와 벼 재배면적 축소를 담은 대책을 내놓았지만 구체성 결여 등 비판이 적지 않다.

“(대책은) 수급을 조절해 쌀값을 80kg당 20만원선에서 안정시키자는 게 핵심이다. 가격을 보장하는 게 아니다. 논에서 밀, 옥수수, 콩, 가루쌀을 재배하면 보조금(전략작물 직불금)을 준다. 쌀 공급과잉을 막고 수입 곡물량도 줄여 국가적으로 이익이 된다. 직불금제도는 농가소득을 보장하고 장기적으로 경쟁력 높이는 분야에 돈을 쓰자는 것이다. 그 예산이 내년 3조원, 2027년에는 5조원으로 늘어난다. 밀과 옥수수, 콩 등 재배 작물 전환은 농업의 구조조정뿐 아니라 곡물 자급률도 높여 식량 안보에도 도움이 된다.”

―농민, 농민단체의 반응은 어떤가.

“야당이 대체입법까지 강행하면 결국 농심을 잃을 거다. 일부 농민단체를 빼곤 농업인·단체 대다수가 개정안을 반대한다. 쌀을 생산해서 가격유지로 얻는 이익보다는 밀, 콩, 옥수수, 화훼, 특용작물 등 다양한 소득원으로 실질 소득을 늘리는 게 낫다. 농민들이 그걸 안다. 쌀에만 편중 지원하는 것에 청년농·축산농가 등 다른 쪽은 불만이 많다. 농민은 양곡법을 정쟁으로 삼지 말고 여야가 근본 대책을 세우기를 요구한다.”

―일본이 올봄 또는 여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방류할 움직임을 보이는데 이에 대한 수산업계의 우려가 크다.

“오염수 논란은 2008년 광우병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는 실체가 없는데 선동과 홍보, 시위로 오염수 방류가 위험하다는 인식을 주려 한다.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오염수 방류는 우리도 관여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야 한다. 방류 해류는 미국과 캐나다를 먼저 돌아 하와이와 북남미 근처, 필리핀 등을 거쳐 한국에 온다. 기간이 4∼5년 걸리고 이 과정에서 희석돼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국제기구와 전문가들의 판단을 수용해야 한다. 정부도 안전장치를 마련하겠지만 수산업자들이 침묵하지 말고 자가방어에 나서야 한다. 공포 분위기가 퍼지면 당하는 건 수산업자 아닌가.”
―후쿠시마 인근 지역 수산물의 수입 금지에도 일본산 식품의 안전 논란이 여전한데.

“후쿠시마산 수산물은 수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방침이다. 정부를 믿어야 한다. 이는 국제관계로 정해진 룰에 따라 진행될 과학적 사안으로 일본도 따라올 것이다. 정부도 식품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수입농산물의 원산지가 둔갑하지 않도록 유통 이력관리를 강화했고 음식점의 원산지 표시 수산물도 확대한다.”

―농어업은 사양산업이라는 인식이 많다. 농어업의 미래 발전방향은.

“사양사업은 맞지 않는다. 반도체와 조선 등 다른 분야에 비해 발전되지 못한 낙후산업이다. 다른 분야의 첨단기술을 자유롭게 접목하면 농어업은 엄청나게 발전할 거다. 생산과 경작은 제외하고 농어업인이 해결할 수 없는 농자재·비료·농약·품종개량 등은 (기업에) 개방하면 좋을 것이다. 동부한농은 2013년 유리온실을 이용해 수출용 토마토를 생산하다가 중단했다. LG그룹도 2016년 새만금에 23만평 스마트팜 (지능형단지) 단지를 조성하려 했지만 포기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농업기술 발전을 위해 전향적으로 생각하고 규제를 풀어야 한다. 농업이 경쟁력 있는 신산업으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첨단기술의 접목과 청년 농업인 육성, 자금과 금융지원 삼박자가 모두 맞아야 한다.”

―평소 농수산업의 수출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아는데 한국 농업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윤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 때 농업 분야에서 5600만달러 규모의 투자약정서(MOU)를 체결해 한국 농업의 수출 가능성을 입증했다. 그 주역인 스마트팜 중소기업 포미트는 원래 발전설비시스템업체인데 그 노하우와 운용체계를 유리온실에 적용해 이런 성과를 냈다. 수출은 상품관리와 마케팅, 자금 등 경영체계를 갖춰야 하는데 한국 농업의 여러 문제를 저절로 해결할 수 있다. 이런 혁신 덕분에 지난해 농수산물 수출액은 120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출품목도 김·딸기 등 신선식품과 라면 등 가공식품을 넘어 첨단기술을 접목한 고부가가치 분야로 확대해야 한다.”
―농촌 지역의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문제가 심각한데 어떤 대안이 있을까.

“가장 큰 문제는 인력부족이다. 일할 사람이 없고 외국인 노동자도 구하기 어렵다. 국가 차원에서 풀어야 할 과제다. 농어촌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민에게도 매력적인 공간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병원과 학교, 문화예술, 복지 등 최종 서비스단계에서 도·농 간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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