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 한목소리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 범정부TF 구성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피해자들 요구 들어달라"
최근 두 달 새 인천에서 전세사기 피해 청년 3명이 잇따라 숨지면서 전국의 전세사기와 깡통주택 피해자들이 한데 뭉쳤다. 이들은 전세사기를 사회적 재난으로 인정해달라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촉구했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회와 '빌라왕' 피해대책위원회 등 피해자 단체들은 18일 오후 인천 주안역 남광장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피해자 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범정부 태스크포스(TF) 구성과 윤 대통령과의 직접 면담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피해자 대책위는 "기획재정부·법무부·금융위원회 등 범정부 TF를 구성해 종합적 전세사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윤 대통령은 전세사기 문제가 국가 책임에서 기인한 사회적 재난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 요구사항을 직접 청취해 각 부처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자 대책위는 이날 △피해가구 수 등 전면적 전세사기 피해실태조사 실시 △구제 방안 마련 전까지 피해주택 경매 일시 중지 △경매 낙찰 자금 대출 도입과 대출 연장 보장 등 피해자 금융지원 강화 등 요구사항을 공개했다. 요구안에는 △ 피해자에게 보증금을 우선 돌려주고 공공이 경매에 참여해 회수하는 선구제를 위한 전세사기 피해구제 특별법 제정 △ 가해자들에 대한 강력한 수사·처벌과 범죄수익 환수 △피해자들과의 상시적 소통기구 구성 등도 담겼다.
피해자 대책위는 "전국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혼자 해결하려고 애쓰지 말고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고 제안한다"며 "무분별한 전세대출과 묻지마 보증, 등록임대주택 관리와 보증보험 부실에 책임이 명백한 정부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도록 함께 외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소통의 공간을 만들고 정부와 국회를 향해 끊임없이 외칠 것"이라며 "오늘이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문제가 끝장나는 길의 첫걸음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자 대책위 구성 공동제안자인 안상미 미추홀구 대책위원장은 이날 "근저당이 있는 집에 왜 들어갔어, 너네가 사기당해 놓고 왜 정부한테 뭐해달라고 하지만, 남들처럼 정부가 만든 제도를 믿고 계약했고 전세사기를 당했다"며 "알면 알수록 제도가 왜 이런가, 제재는 왜 없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피해자들끼리 모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어 "정부가 지금 내놓는 대책을 보면 오히려 전세사기 치라고 등 떠미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며 "전세사기는 미추홀구만이 아닌 전국 방방곡곡에서 지금도 터지는 사회적 재난"이라고 강조했다. 피해자 이철빈씨는 "도움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절망했고 연이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며 "피해자들 요구를 수용해 더 큰 희생을 막을 수 있도록 대통령실, 정부, 정치권 모두 힘을 모아달라"고 말했다.
피해자 대책위와 참여연대 등은 이날 '잘못된 정책들이 서민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사기꾼은 돈잔치, 피해자는 빚잔치' 등 피켓을 손에 들고, "전세사기 피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피해자 대책위 등은 이날 전세사기 피해로 숨진 청년 3명을 추모하는 행사도 열었다. 이날 행사장 한쪽에는 3명의 피해자 영정과 국화도 놓였다.
지난 17일 미추홀구 한 아파트에서 박모(31)씨가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지던 도중 숨졌다. 집에선 유서가 발견됐다. 지난 14일에는 미추홀구 한 연립주택에서 임모(26)씨가, 지난 2월 28일에는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P(39)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건축업자 남모(62)씨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17일 숨진 채 발견된 박씨는 2019년 9월 보증금 7,200만 원에 아파트 전세 계약을 맺은 뒤 2년 뒤 재계약을 하면서 보증금을 9,000만 원으로 올렸다. 박씨의 아파트는 지난해 3월 경매에 넘어갔는데, 박씨는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임대인 요구에 따라 보증금을 과도하게 올려줬기 때문이다. 보증금이 8,000만 원 이하였다면 박씨는 최우선변제금 2,70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2019년 8월 전세금 6,800만 원을 내고 입주했다가 2년 뒤 재계약 때 9,000만 원으로 올린 임씨는 박씨 아파트보다 2년 늦게 지어져 그나마 최우선변제금 3,400만 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나머지 5,600만 원은 허공에 날려야 했다. P씨도 전세금 7,000만 원을 한 푼도 못 건졌다.
박씨는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보증금을 날리면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육상 실업팀에서 활동한 박씨는 지난해부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렸고, 임씨는 무직 상태였다. 박씨의 집 현관문에는 단수 예고장이 붙어 있었고, 임씨는 숨지기 며칠 전 어머니에게 "2만 원만 보내달라"고 전화를 걸었다. P씨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유서를 남겼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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