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신줏단지 된 재정준칙
사람들은 빚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나랏빚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다. “나랏빚이 1000조원을 넘어섰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18일 발언에 시민들 가슴이 철렁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가계와 국가 경제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저서 <불평등의 대가>에서 “정부 예산이 한 가구의 예산과 흡사하다는 신화를 깨야 한다”고 말했다. 장하준 교수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정부 재정을 가계 살림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개인의 지출과 달리 정부의 지출은 거시경제 전체에 대대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이후 줄곧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날도 재정준칙 법안의 신속한 통과를 국회에 주문했다. 재정 건전성은 중요하지만 금과옥조는 아니다. 장 교수 표현을 빌리면, 지금처럼 경제 침체가 심각한 상황에서 긴축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정부 지출의 우선순위도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윤 대통령은 “국방, 법치와 같은 국가 본질 기능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지만 정부 지출은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지원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들은 궁핍한 상태에서 돈이 생기는 대로 소비하기 때문에 내수 증가로 직결된다.
주지하듯 요즘 가장 힘들게 사는 사람들은 20·30대 청년들이다. 극심한 생활고에 당장의 끼니를 걱정하는 청년들이 많다. 전세사기를 당해 목숨을 끊은 인천 미추홀구의 20대 남성은 2만원이 없는 상태였고, 30대 여성은 수도요금 통지서가 쌓일 정도로 쪼들렸다. 윤 대통령은 “정부 지출 확대는 미래 세대에 대한 착취”라고 했지만, 청년층에 복지 지원을 늘리면 이런 걱정은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나랏빚을 줄이는 근본 해결책은 증세다. 증세로 경기가 위축될 수 있지만, 재정 지출로 인한 경기 부양 효과가 훨씬 크기 때문에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부자 감세를 통한 ‘낙수 효과’는 모호하지만, 저소득층 복지 강화를 통한 ‘분수 효과’는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이미 검증됐다. 윤 대통령이 신줏단지처럼 여기는 재정준칙이 복지 축소를 위한 논리로 악용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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