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암투 난무하는 정치판 부조리 맞선 여자들의 연대
재벌에 충성하던 오너 리스크 전문가
‘인권 변호사 서울 시장 만들기’ 나서
갑질·미투 폭로 등 현실 사회 축소판
재력·권력 쥔 여성들의 서사 매력적
극 초반 문소리 캐릭터 이질적 느낌도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 방안엔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밖에선 물러나라는 시위 소리. 뉴스에선 회사 직원과 운전기사를 폭행한 은성그룹의 은채령 상무가 검찰 포토라인에 설 예정이라는 아나운서 목소리. 여러 소음 가운데 한 여성이 옷들이 걸려 있는 곳으로 간다. 옷을 살펴본 그는 사람들을 향해 거침없이 말을 내뱉는다.
첫 장면은 황도희가 은성그룹 둘째 딸 은채령 상무가 검찰에 출두하기 전에 입을 의상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은채령 상무는 갑질의 종합판이다. 특히 현실에서 논란이 됐던 재벌가의 모습 그대로다. 2014년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을 벌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검찰 출두를 떠올리게 한다. 검찰 조사 뒤 그가 남편한테 소리 지르고 쓰러지는 장면은 ‘물컵 갑질’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를 연상시킨다.
드라마는 단순히 재벌가만 등장시키지 않는다. 정치 드라마라는 타이틀답게 현실 정치인들도 담았다. 오경숙이 시의원이던 당시 노동자들의 휴식 공간 크기를 표현하기 위해 의회에 신문지를 가지고 나와 드러눕는 장면은 고 노회찬 의원이 2017년 국정감사장에서 신문지를 깔고 누웠던 것과 같다. 오경숙이 무소속으로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뒤 국민개혁당 서민정(진경) 3선 의원과 단일화 경선을 하는 과정은 2011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이뤄진 ‘박영선·박원순’ 단일화 경선과 닮았다. 서민 정치를 외치는 서민정 의원이 고액의 피부과를 이용하고 고가의 필라테스 강습을 받았다는 의혹이 경선 직전에 터져 타격을 받는 장면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나경원 의원의 1억 피부과설을 떠올린다.
드라마에선 이처럼 재력과 권력을 가진 ‘여성’들의 비리와 불법 등이 쏟아진다. 아니 휘몰아친다. 강과 약이라는 세기 조절 없이 강강강. 쉴 틈도 없이 하나가 나오면 그다음에 다른 하나가, 그리고 또 다른 하나가 연이어 나온다. 이들은 모두 국민을 공분케 했던 현실 이야기다.
그렇다고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우는 건 아니다. 정치가 주요 소재이지만 재계의 이야기까지 담았다. 여기에는 남녀 구분이 없다. 은채령 상무의 남편인 백재민(류수영)이 대표적이다. 그는 비영리복지재단을 이끌며 꾸준한 봉사와 나눔으로 은성그룹 오너 일가와 달리 대중에게 이미지가 좋다. 하지만 그도 그런 이미지를 활용해 악행을 저지른다. 여성 보좌관 한이슬(한채경)이 유혹해 협박하고 있다고 누명을 씌운 것. 한이슬은 미투 폭로를 하려다가 투신 사망한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등 ‘미투 폭로’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투표 2주 전을 그린 후반부에서도 정책 대결 대신 네거티브전이 진행되는 모습까지도 현실 정치판을 떠올린다.
연출을 맡은 오진석 감독은 지난 11일 제작보고회에서 “영어에 ‘킹메이커’라는 말은 있지만 ‘퀸메이커’라는 말은 없는데, 그만큼 정치나 권력은 전통적으로 남성의 것이었다는 뜻”이라며 “그 세계에 두 여성이 정면으로 나서 충돌하고 연대하는 과정을 담으려 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실 악행의 종합판인 은성그룹 오너 일가와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는 황도희와 달리 정의를 상징하는 오경숙의 모습은 다소 겉도는 느낌이 든다. 진지함이 가득한 곳에 생뚱맞은 인물이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드라마 초반에 몰입을 방해한다. 그러나 황도희와 오경숙이 손을 잡고 선거판에 뛰어드는 내용부터는 오 감독의 말처럼 두 여성의 서사가 본격적으로 담기면서 이러한 어색함이 사라진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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