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분노의 인천 합동추모제

박준철 기자 2023. 4. 18.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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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들로 구성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회원들이 18일 인천 미추홀구 주안역 남측 광장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마친 후 첫 사망자 49재를 맞아 추모식을 갖고 있다. 조태형 기자

18일 오후 7시 30분 경인선 인천 주안역 남측광장. 퇴근길 전철에서 내린 시민들은 하얀 국화꽃을 얼굴도 없는 영정에 헌화하고 묵념했다. 인천 미추홀구를 비롯해 서울과 경기, 포항, 제주 등 전세사기 피해자 100여명이 모여 진행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합동추모제’ 현장이다.

합동추모제는 애초 지난 2월 전세보증금 7000만원을 한 푼도 받지 돌려받지 못한 채 극단적 선택을 한 A씨(38)를 위한 49재 성격이었다. 그러나 전세사기 피해로 생활고를 겪다가 지난 14일 B씨(26)와 지난 17일 C씨(31) 등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전세사기 피해자 합동추모제’로 바뀌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추모 현장에서도 “미추홀구 조직적 전세사길 일당 엄중 처벌하라” “사기범들 재산몰수 피해구제 지금 당장, 전세사기 가담자들 살인죄로 엄벌하라”는 등의 피켓을 들고 시민들에게 서명을 받고 있었다. 그만큼 전세사기에 대한 그들의 사회적 분노가 커 보였다.

추모제에 참석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D씨(45)는 앞서 극단적 선택을 한 3명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D씨도 전세보증금 9000만원을 한 푼도 못 받고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D씨는 지금 사는 아파트에 이사 오기 전 6500만원의 전세 대출금을 받았다. 그러나 D씨는 2700채를 보유한 ‘인천 건축왕’에게 1차 전세사기를 당했다. 이어 전세대출이 안되자 이번엔 전액 신용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했는데 또다시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

그는 원금과 이자만 월 150만원이라며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놓였다고 털어놨다. D씨는 “먹을 것 안 먹고, 아끼면서 겨우 연명하고 있다”며 “살던 집에서 쫓겨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E씨(43·여)도 사정은 비슷했다. 2019년 6500만원의 전세보증금을 주고 들어간 E씨는 2년 뒤인 2021년 보증금을 1000만원 올려줬다. 그러나 그가 사는 아파트도 통째로 지난달 경매에 넘어갔다. 임대인은 E씨 집을 비롯해 이 아파트 각 가구당 1억5000~1억7000만원의 근저당을 설정했다.

전체 136가구 중 한국토지주택공사(LH) 소유 50가구를 제외한 86가구는 경매가 진행돼 낙찰자가 생기면 조만간 집을 비워줘야 할 판이다. E씨는 “최우선변제금으로 3400만원을 손에 쥐지만 이 돈으로 어디를 가겠냐”고 한탄했다.

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장은 “미출홀구는 ‘건축왕’이라는 사람이 부동산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인, 건물관리업체까지 50여명이 공모한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전세사기로 누구든 당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위원장은 이어 “전세사기로 극단적 선택을 한 3명은 자살이 아닌 벼랑 끝에 내몰린 타살에 해당된다”며 “정부가 나서 피해자를 구제하고 가해자를 엄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상미 미추홀구전세사기대책위원회 위원장이 18일 인천 미추홀구 주안역 남측 광장에서 가진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 중 발언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이날 합동추모제에 앞서 같은 장소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출범식이 있었다.

전국대책위는 “그동안 정부와 국회는 집값·전셋값 폭등을 방치하는 것을 넘어 갭투기가 가능하도록 전세 대출 확대정책을 펼쳐왔다. 금융기관과 보증기관도 무분별한 대출과 ‘묻지마’ 보증을 남발했고, 정부와 자치단체는 등록임대사업자에 대해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라며 “이로인해 사건은 단순한 사인 간의 사기 계약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 명백한 ‘사회적 재난’이라고 주장했다.

전국 대책위는 이어 정부는 생색내기용 대책이 아닌,범정부 T/F팀을 구성해 전면적인 실태조사와 피해유형별 지원대책 수립, 금융지원 강화, 피해주택 경매 일시중단, 전세사기 피해구제 특별법 등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실질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박준철 기자 terry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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