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 빌라왕’ 피해자, 1억 빚 안은채 퇴거명령만 기다려
# 벼랑에 내몰린 사람들
- 떼인 보증금, 빚으로 고스란히 남아
- 살던 집 경매완료 땐 바로 집 비워야
- 최우선변제권 행사도 못하는 세입자
- 매각대금 한푼도 못받고 빈손 쫓겨나
# 무너지는 삶, 미흡한 대응
- 부산 6개월간 전세사기 226명 검거
- 허위 임대차계약서 작성, 50억 대출
- 금융기관 직원이 범행 주도한 사례도
지난해 연말부터 전세사기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5개월째에 접어들면서, 부산 인천 등 전체 피해 세대 규모는 3000세대 이상으로 추정된다. 특히 지난 2월 부산 서면·동래구 일대에서 대규모 전세사기 행각을 벌이다 구속된 30대 남성 A 씨(국제신문 지난 17일 자 4면 보도 등)의 피해 세대만도 15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서면 동래 뿐만 아니라 사상구를 포함한 다른 지역의 건물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전세사기 피의자 226명 검거
전세사기 범죄의 심각성은 꾸준히 제기됐다. 경찰은 지난해 7월 25일부터 지난 1월 24일까지 ‘전세사기 전국 특별 단속(1차)’을 실시하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단속이 끝난 지난 2월 부산에서 대규모 전세사기 범죄가 또다시 터져나왔다. 부산경찰청 단속 결과, 해당 기간 모두 226명을 검거하고 9명을 구속했다.
범죄 유형별로는 ▷깡통전세 등 보증금 미반환 사례로 검거된 이가 123명(구속 6명)으로 가장 높은 비율(54.4%)을 기록했다. 이어 ▷허위 보증·보험(78명 검거·1명 구속) ▷공인중개사법 위반(9명 검거) ▷권리관계허위고지(8명 검거) ▷무권한계약(5명 검거·1명 구속) ▷무자본 갭투자(3명 검거·1명 구속) 순이었다.
현직 금융기관 직원이 주도해 범행을 저지른 사례도 있었다. 이 직원은 모집책을 활용해 성인가출팸을 만들고, 허위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해 무려 19개 금융기관에서 50억 원을 대출받았다. 부산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지난해 9월 관련 일당 31명을 검거하고 이중 1명을 구속했다.
전세계약과 매매계약을 동시에 진행해 전세 보증금을 임차인 몰래 바지매수자(노숙자·신용불량자)에게 떠넘겨 수도권의 152채 빌라 보증금 361억 원 상당을 떼먹은 사기 조직 113명도 경찰에 붙잡혔다.
전세사기 범죄는 특히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특징을 보인다. 이날도 인천에서 피해자 3명이 잇따라 사망한 전세사기 사건과 관련해 주범인 이른바 ‘건축왕’의 30대 딸이 ‘바지 임대인’으로 범행에 가담한 사실이 확인됐다.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수사1계는 사기 등 혐의로 건축업자의 딸 B(34)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날아오는 경매 통지서, 벼랑 끝 피해자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보증금을 떼일 뿐더러 경매 진행에 따라 살던 곳에서 강제 퇴거를 당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사기 매물은 채권액과 전세금을 합치면 시세를 넘어가는 ‘깡통전세’가 대부분이라 매각이 완료돼도 세입자가 받을 돈은 없다. ‘최우선변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불행 중 다행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부산 기준 현재 보증금 8500만 원 이하일 때 세입자에는 2800만 원까지 보장된다. 보증금 7000만 원 이하, 2300만 원을 보장했던 기준이 그나마 지난 2월 14일자로 상향됐다.
최근 서면 오피스텔에서 발생한 전세사기 피해자 중 한 명인 C(35) 씨는 최근 경매 집행관이 다녀갔다는 통지를 받았다. 한부모가정으로 8세 자녀를 키우는 C 씨는 2021년 8월 보증금 1억1000만 원에 월세 13만 원으로 계약 후 이곳에 입주했다. C 씨는 피해자들이 공동 진행하는 소송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보증금을 돌려 받을 확률이 낮다고 판단했고, 진행에 필요한 수수료도 부담됐기 때문이다. C 씨는 지금도 매월 오피스텔 대출금과 이자를 40만 원 이상씩 갚고 있다.
C 씨는 “경매로 전셋집이 낙찰되면 당장 이곳을 나가야 하는데 아이를 데리고 가야할 곳을 찾아야 해 걱정”이라며 “소송 진행도 포기했다. 개인 회생을 알아보는 중이고, 부산시가 지원하는 긴급시설 입주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에 따르면 지난달 운영이 시작된 전세사기 피해자 긴급 주거시설(부산 내 84호)에는 아직 한 명도 입주하지 않았다. 문의는 많지만, 입주를 위해선 살던 집이 경매에서 낙찰됐다는 피해확인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기준을 충족한 피해자는 2명인데 개인 사정으로 입주가 늦춰진 상태다.
정부가 구제대책을 잇따라 발표하는 가운데 부산시와 지자체 역시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면 오피스텔 피해자 측은 “최근 시청 구청 등 주무 부서에 대응방안을 문의했지만 사안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곳이 없었다”며 “지난 3일부터 부산시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센터 운영을 시작했는데 더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 관계자는 “현재 매일 전화상담은 평균 30건 가량 들어오고, 전날까지 방문 상담으로 78명이 다녀갔다. 문의가 많은 상황”이라며 “적극적인 대응 방안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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