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 설명 안 되는 언론재단 'KBS 기자 해외연수 취소 사건'

윤수현 기자 2023. 4. 1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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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없는 해외연수 취소 결정, 절차적 정당성도 부족
언론재단 전 임직원 "있어선 안 될 일"… 외부 압력 의혹도 제기
언론재단 비상임이사, 이사회에서 관련 문제제기 예정

[미디어오늘 윤수현 기자]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표완수, 이하 언론재단)의 범기영 KBS 기자 해외연수 취소 사건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전례가 없으며, 절차적인 정당성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에 언론재단 전 임직원들은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정을 내놓았다. 그렇지 않고선 언론재단이 이 같은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이 적다는 지적이다. 19일 열리는 언론재단 이사회에서도 관련 문제가 제기될 예정이다.

범기영 기자는 언론재단의 해외장기연수자로 선정돼 올해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1년간 공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언론재단은 12일 돌연 범 기자의 연수자 선정을 취소했다. 범 기자가 지난달 16일 윤석열 대통령 방일 환영 행사 중계에서 “일장기를 향해서 윤 대통령이 경례하는 모습을 봤다”고 발언한 것을 문제 삼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재·내부 징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연수를 지원하는 건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선정 자체를 취소하겠다는 논리다. KBS는 방송 당일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사진=미디어오늘.

언론재단 전 임직원들은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언론재단이 해외연수 취소 과정에서 절차적인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언론재단 설명에 따르면 범 기자 해외연수 취소는 임원회의에서 결정됐다. 하지만 해외연수 선발은 언론재단 임원이 아니라 별도 심사위원회에서 결정됐다.

언론재단이 기자가 오보를 냈다는 이유로 해외 장기연수를 취소한 사례도 없다. 실제 언론재단은 해외 장기연수 지원서를 받을 때 징계 및 오보 내역·방통심의위 심의 사례 등을 묻지 않는다. 기자의 오보 여부를 주요 심사사항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번 해외연수 선발자 중에서도 정정보도를 낸 경험이 있는 기자들이 있다.

언론재단 전 간부 A씨는 “과거 정권이 바뀐 후 심사위원을 교체하라는 요구가 있었던 적은 있지만, 이미 선정된 언론인을 취소시킨 적은 없다”며 “언론사에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을 갖고 사업을 집행해야 할 언론재단이 이런 정치적인 문제에 휘말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언론재단 전 간부 B씨 역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재단이 압력을 받았을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A씨는 “범 기자가 큰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지 않는가”라면서 “유무형의 압력이 있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무자들이 그렇게 일 처리를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임원진이나 상급 기관의 요구가 있었다고 해도 문제고, 재단이 자체적으로 판단한 거라면 더 큰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은) 재단의 존립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했다.

언론재단 전 임원 C씨 역시 “방송에서 실수한 것이 해외연수 자격 기준에 무슨 문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윤석열 정부에 대해 부정적인 보도를 한 기자는 해외에 못 보내겠다는 것 아닌가. 그런 논리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말이 안 되는 조치이기 때문에 언론재단도 명확한 답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C씨는 “심사위원들이 내린 결정을 임원들이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밝혔다.

언론재단 비상임이사 D씨는 19일 이사회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문제 지적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D씨는 “이 문제를 가지고 이사회에서 입장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전례도 없고, 규정도 없는데 어떻게 해외연수를 취소할 수 있는가. 이번 사건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비상임이사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언론 시민단체 역시 언론재단의 이번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언론비상시국회의, 동아·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언론광장, 새언론포럼은 18일 논평을 내고 “KBS 기자 연수취소는 '비판 언론인 길들이기'”라면서 “ 단언컨대 정권 핵심의 심기를 거스르는 오보를 했다는 이유로, 심사위원단의 결정을 내부 임원들이 뒤집은 것이다. 쿠데타가 따로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중립적인 자세로 자유로운 언론 활동을 지원해야 할 언론진흥재단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에 충격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면서 “이번 사태가 최근 '친윤 언론인들'이 언론진흥재단의 임원으로 임명된 직후 벌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한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언론재단에 △KBS 기자 연수 취소 결정 즉각 철회 △이번 사건에 대한 전말 공개와 책임자 문책 △언론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했다.

범기영 기자는 미디어오늘에 “지난해 하반기부터 여러 고민 속에 연수 준비를 시작했다. 몇 개월간 준비해온 프로젝트가 절차적 정당성도 갖추지 못한 결정으로 무너진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번 언론재단 결정은 보수성향 대학생단체인 신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가 문제제기를 하면서 촉발됐다. 신전대협은 11일 오전 범 기자의 해외연수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고, 그날 오후 언론재단은 해외연수 취소 논의를 진행했다. 다음날인 12일 오전 9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언론재단이 범 기자를 해외연수 대상자로 선정한 것을 비판했고, 같은 시각 언론재단은 범 기자에게 선발 취소 통보를 내렸다.

언론재단 측은 미디어오늘에 “심사 과정에서 그런 내용(오보)까지 심의가 됐어야 하는데 인지를 못했다. 사전에 문제가 있었다면 당연히 걸려졌을 것이다. 단순히 오보 때문에 취소한게 아니라, 내부 징계나 방통심의위 심의 중인데 재단이 지원하는 건 맞지 않겠다고 판단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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