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잊히지 않을 혁명` 계승 한평생… "국경일 지정·기념관 건립 이뤄야죠"
10년째 회장직 맡으면서 국가로부터 외면받는 현실에 가장 힘들어
민주 유공자 예우 아직은 부족… "세계기록유산 등재되도록 노력"
정중섭 4.19 혁명희생자유족회장
"미국의 독립혁명이나 프랑스 대혁명처럼 4·19 혁명도 국경일로 지정해 국민적 동의와 공감을 현실화해야 합니다."
정중섭(71·사진) 4·19혁명희생자유족회 회장은 지난 10년간 유족회를 활력 있는 단체로 바꾸기 위해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해왔다. 그간 여러 성과가 있었지만 4·19 혁명 국경일 지정과 기념관 건립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63주년 4·19 혁명 기념일을 하루 앞둔 18일 서울 종로 새문안로 4.19혁명기념회관에 자리잡은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이 두 가지는 마땅히 시행됐어야 하나 독재정권으로 인한 민주주의 후퇴와 정부의 인식 부족 등으로 아직 실현하지 못했다"며 "헌법 전문에도 4·19 민주이념의 계승이 명시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올해는 4·19 혁명의 역사적 가치와 의의에 걸맞게 공론화하고 정부기관에 당위성을 피력하는 등 성과를 내기 위해 매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 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4·19 혁명에 참여한 아버지를 통해 많은 얘기를 들으며 자랐다. 정 회장의 아버지는 일본 와세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온지 얼마 되지 않은 30대 초반에 4·19 혁명에 참가했다.
"아버지는 부패한 자유당 정권의 독재에 맞서 맨 앞자리에서 시위를 하시다가 허벅지에 경찰이 쏜 총탄을 맞으셨어요.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가 마비돼 평생 불구의 몸으로 사셨습니다. 어머니는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셔서 초등학생이던 제가 아버지의 병상 곁을 지켰어요."
정 회장은 아버지뿐 아니라 당시 서울적십자병원에 입원한 다른 4·19 혁명 참여 인사들을 삼촌으로 모시며 심부름도 하고 역사의 순간순간을 수시로 듣고 새겼다. 열 살 때부터 그는 4·19 혁명이 대한민국 민주발전의 전기를 마련한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란 걸 누구보다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4·19 혁명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선 유가족이 먼저 나서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2013년 회장직을 맡게 됐어요. 10년 동안 자유·민주·정의를 위해 희생하신 민주 열사들의 유지를 받들고 유가족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아가실 수 있도록 보살피고자 달려왔습니다. 미력하나마 회원 복지를 실현하며 그들의 신임을 얻고 단체의 위상도 높여 뿌듯합니다."
정 회장은 서울 강북구청과 함께 10년간 4·19혁명국민문화제를 진행하며 젊은 세대에 민주정신을 자연스럽게 일깨워주고 보훈 문화를 확산한 것을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그는 "과거 4·19 혁명 관련 행사는 정부 차원의 기념식이나 추모제에 그쳤다"며 "4·19혁명국민문화제를 통해 4.19 혁명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국민의 참여와 관심도를 높여와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문화재청이 4·19 혁명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관련 신청서를 유네스코 본부에 제출했다. 정 회장은 "4·19혁명희생자유족회와 4·19민주혁명회, 4·19혁명공로자회가 2013년부터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노력해온 결과 성과를 낸 것"이라며 "4·19 혁명의 가치를 인정받고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세계와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빠른 시일 내에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다수의 결실이 있었지만 그 과정들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유족회 미망인들이 연로하시고 좀 어렵게 사시니까 그분들의 복지 실현을 위해 수익사업을 시작했다"며 "개인 활동비 전부를 불우회원을 지원하는 데 쓰기도 했다"고 운을 뗐다.
"4·19 혁명이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히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민주유공자들이 국가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어요. 굴곡의 역사를 견뎌온 4·19 혁명을 재인식시키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단체와 유족에 대한 지원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하고 명예를 높이는 일 또한 쉽지 않습니다."
정 회장은 "독립·호국 유공자에 비해 민주 유공자에 대한 인식과 예우가 아직은 부족하다"며 "정부 차원의 민주 유공자에 대한 예우가 달라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4·19 혁명에 대한 다양한 연구나 가치 정립을 위한 노력이 부족한 것도 현실"이라며 "4·19 혁명의 역사를 제대로 조명하고 가치와 의의를 왜곡 없이 현재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한 정부의 지원과 학계의 관심을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4·19혁명희생자유족회는 4·19 혁명 정신 선양과 계승을 위한 중심 단체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며, 4·19 혁명의 역사가 굴절 없이 뻗어나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책무를 다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박은희기자 eh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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