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 3명 떠나고서야…정부 ‘경매 중단’ 뒷북 추진

최하얀 2023. 4. 1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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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살던 집에 대한 경매 중단·유예 방안을 강구하기로 한 것은, 피해자 상당수가 선순위 저당권에 밀려 경매·공매 때 보증금을 모두 날리게 될 처지이기 때문이다.

소액보증금 최우선 변제 제도나 새집으로 이사 때 저금리 대출 지원, 긴급 주거 지원책 등 기존 대책은 경매에서 보증금 일부조차 회수할 수 없는 후순위 임차인들에겐 실효성이 없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데 따른 조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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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인천에서 전세사기 피해자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인천시 미추홀구 희생자 집 들머리에 18일 오후 추모 조화가 놓여 있다. ‘건축왕’이라고 불리는 건축업자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숨진 것은 지난 2월부터 이번이 세번째로, 모두 20~30대 청년들이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살던 집에 대한 경매 중단·유예 방안을 강구하기로 한 것은, 피해자 상당수가 선순위 저당권에 밀려 경매·공매 때 보증금을 모두 날리게 될 처지이기 때문이다. 소액보증금 최우선 변제 제도나 새집으로 이사 때 저금리 대출 지원, 긴급 주거 지원책 등 기존 대책은 경매에서 보증금 일부조차 회수할 수 없는 후순위 임차인들에겐 실효성이 없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데 따른 조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18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제물류산업대전 개막식에서 기자들을 만나 “경매 유예와 관련해 금융기관에 협조를 요청할 것”이라며 “피해 임차인의 우선매수권이나 (경매 낙찰금에 대한) 융자 지원 등도 살펴보고 있다. 우선매수권은 다른 법과 충돌, 악용 소지도 있어 방지 장치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우선매수권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도 논의됐지만 갑론을박 끝에 추진이 보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 핵심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우선매수권은 검토할 부분이 많아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선매수청구권은 제3자가 경매를 통해 주택을 낙찰받더라도 임차인이 해당 낙찰 금액을 법원에 내면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리로, 임차인이 보증금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꼽힌다. 정부는 조만간 구체적인 경매 유예 방안 등을 발표할 예정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부 안에서는 경매 중단 조처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강했다. 선순위 저당권자의 권리행사를 정부가 제약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인천 미추홀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근저당권이 잡힌 집에 세 들어 살던 전세사기 피해자들에 대한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분위기가 달라진 모양새다. 민사소송을 많이 담당한 판사 출신 한 변호사도 “채권자 동의가 있으면 판사가 매각(경매) 기일을 연기할 수 있다”며 “통상적으로 두달씩 두번 정도 연기가 되곤 한다”고 말했다.

이날 출범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자료를 보면, 대책위에 가입된 1787가구 가운데 59.65%인 1066가구가 경매·공매에 넘어간 상태다. 이 가운데 106가구는 낙찰되어 매각이 끝났고, 261가구에 대한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다. 대책위 쪽은 대책위 미가입 가구까지 고려하면 전체 피해 가구 3079가구 가운데 2083가구(67.6%)가 경매·공매에 넘어갈 것으로 추정한다. 올해 들어 미추홀구 주요 지역 주택 경매 낙찰가는 감정가의 50~60%에 그치는 터라, 선순위 근저당권자인 금융기관에 먼저 배당이 이뤄지고 나면 임차인은 빈털터리로 쫓겨날 공산이 큰 상황이었다. 설사 최우선 변제 대상이 된다고 하더라도 보증금에는 한참 못 미치는 변제금만 받고 집을 비워줘야 한다.

피해자들이 전셋집에서 쫓겨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경매 중단 조처가 시급하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 때문에 피해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안과 함께 공공기관이 직접 피해가 발생한 ‘깡통전세’ 주택을 사들이는 방안도 거론된다. 공공기관이 임차인으로부터 보증금반환채권을 사들여 경매 등 보증금 회수 절차를 대신하고, 임차인에게 적정 수준의 보증금을 보전해주는 방안이다. 이 경우 보증금 미반환 주택은 공공기관이 매입해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한 뒤 피해 임차인에게 우선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한 ‘임대보증금 미반환주택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안’은 지난 3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국회에 제출돼 있다.

이날 출범한 참여연대,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민달팽이유니온 등 6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도 기자회견을 열어 깡통전세 주택의 공공 매입과 피해 구제를 핵심으로 하는 △깡통전세 특별법 제정 △전세가격(보증금) 규제를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보증금 갭투기 방지 등을 위한 전세대출·보증보험 관리 감독 강화 등을 요구했다. 출범식 뒤에는 2월 숨진 전세사기 피해자 박아무개(38)씨의 49재와 지난 14일 숨진 20대 임아무개씨의 추모행사가 열렸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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