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空 넘어 수장고 감상···'3D 복원'이 최적의 도구"
20년 경력···주요 박물관 두루 거쳐
문화재, 산업·기술 발전 흐름 내포
복원작업 '데이터 에셋'확보 중요
유물 하나당 한달, 6~7명 매달려
기술 뛰어나도 장인은 못 따라가
중요한 건 사람···협업없인 불가능
서울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벽 발광다이오드(LED) 대형 스크린. 화면 속 칼을 든 이순신 장군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모습으로 서 있다. 태극기를 든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3·1 만세 운동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뒤이어 나타나는 기증기를 이용한 수원 화성 공사, 번개가 내리치는 조선총독부 건물 등등. 문화재 디지털 복원 전문 업체인 문화유산기술연구소(TRIC)가 제작한 실감형 콘텐츠 ‘광화연대기’다.
광화연대기를 탄생시킨 주인공은 대전광역시 용두동에 위치한 TRIC에서 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김진옥(43) 수석연구원. 문화재 관련 업무만 20년간 해온 김 연구원은 공무원에서 민간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보기 드문 케이스다. 역사박물관·고궁박물관·국립해양박물관 등을 거치면서 문화재 복원, 협업 등에 대한 노하우를 쌓기도 했다.
그에게 문화재란 살아 있는 교과서이자 선생님들이다. 유물을 분석하다 보면 산업과 기술 발전 흐름은 물론 미학의 힘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배워도 모든 것을 생산하고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질 수는 없잖아요. 문화재는 달라요. 금속공예를 배우지 않아도 고대부터 현대 유물을 보면 산업이 어떻게 흘러왔고 기술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알 수 있죠. 그러니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김 연구원이 이 일에 매달리는 데는 뚜렷한 이유가 있다. 문화재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 때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기회가 보편적으로 동일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주 중요한 유물은 보전을 위해 몇 년에 한 번 드물게 공개하는 실정이다. 그는 “기술은 이러한 제약을 넘어 시공간에 상관없이 누구나 문화재를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매우 뛰어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디지털 복원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래 유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전하는 것이다. 문화재 복원·보전이 과거 수장고의 역할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데이터 에셋’으로, 쉽게 얘기해 책이나 문서와 같은 2차원 유물과 물건, 건물 등 3차원 유물을 사진이나 3차원 데이터로 전환해 확보하는 것이다. 그는 “직물의 꼬임, 안료 등과 같은 것까지 표현하려면 2차원 유물의 경우 평균 100장 정도는 찍어야 하고 여기에 질감·반사광 등 3차원적 표현까지 하려면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가 필요하다”며 “데이터 에셋을 활용하면 과거에는 사진을 다시 찍어야 했던 것을 이제는 데이터를 활용해 좌우상하를 바꾼 사진을 확보할 수 있고 따라서 유물에 대한 활용도 무궁무진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작업량이 방대한 만큼 들어가는 노력도 상당하다. 데이터 에셋을 확보하기 위한 사진을 찍는 데 이틀, 3차원화하는 데 하루, 영상으로 구현해서 입히는 데 2주 등 유물 하나당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요구된다. 인력도 적지 않게 필요하다. 그는 “촬영 전문가, 개발자, 데이터 구현에 필요한 전문가, 복원 전문가 등 6~7명이 매달려야 한다”며 “이렇게 확보한 데이터가 회사 설립 이후 2만여 점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혼자만의 힘으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를 실제 유물과 일치시키려면 전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전자통신연구원과 협력하는 이유다.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대학 박물관의 도움과 원(源)데이터인 한자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전문가들도 있어야 한다. 이뿐만 아니다. 문화재 복원 기술을 보유한 장인들도 필수적이다.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디지털 병풍 ‘평생도’의 경우 질감을 살리기 위해 실크연구원의 도움을 받았고 경대를 표현할 때는 대전 공예가의 지원이 있었다”며 “협업 없이 기술만으로는 완벽한 복원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TRIC가 명장이나 장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비영리재단 설립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공산품이 아니다 보니 수익을 내기가 힘들기 때문에 전통 기술자들은 문하생들이 별로 없다”며 “하지만 기술과 기계가 아무리 정교해도 명장들을 따라갈 수는 없고 이들이 떠나면 문화재 복원도 불가능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송영규 선임기자 skong@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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