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세월호·노동운동을 보는 심상치 않은 시선 [하종강 칼럼]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2019년 경기도 안산에서 청년 노동자들을 위한 공개 특강을 했는데, 며칠 전 어떤 이가 새삼스레 당시 해묵은 홍보 포스터와 보수언론의 사설을 엮어 인터넷에 내가 볼 수 있도록 올렸다. 사설을 훑어보니 2018년 안산지역 한 시민단체가 세월호특별법에 따라 지원받은 사업비를 불온한 활동에 썼다는 내용이다. 사설에서는 그런 일을 한 사람들을 “천벌을 받을 사람들이다”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굳이 그 사설과 내 강연 포스터를 엮어서 내가 볼 수 있도록 올려준 이의 눈에는 그 행사에 참여한 내가 바로 그 천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처럼 보였던 듯싶다.
포스터의 홍보 문구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안산 청년들을 위한 노동 이야기, 웹툰 <송곳>의 주인공인 구고신 소장의 실제 모델인 하종강 교수를 만나 청년들의 가려진 노동에 대해 듣다.” 문구 그대로 우리 사회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온갖 비정규직 노동을 하는 청년 노동자들의 삶에 관한 내용이 강연의 중심이었다. 그 행사를 주최한 단체가 세월호특별법에 따른 사업비 지원을 받았는지는 아는 바 없다. 그런데 그 정도의 활동이 과연 천벌을 받을 만한 일인가?
문제는 최근 이렇게 이상한 기운을 접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는 것이다. 지방 소도시 시청 강당에서 우리나라 노동인권 실태에 관한 강의를 했다. 대면과 원격 강의를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이어서 강의가 끝난 뒤 인터넷 게시판으로 질문을 받았다. 올라온 첫번째 질문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전교조가 특정 사상을 전파함에도 합법화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질문은 근 20년 만에 받아보는 것 같다. 보수정권이 들어선 뒤 움츠려 있던 극우세력이 서서히 용기를 얻으며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는 싸한 느낌이 등 뒤를 훑고 지나갔다. 그들로서는 흡사 ‘거대한 반격’이다. “전교조가 특정 사상을 전파하지도 않거니와 만에 하나 개인적으로 그런 소신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이유로 수만명이 가입한 실체가 있는 조직을 불법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교과서적인 답변을 하고 넘어갔다.
안산이 어떤 도시인가? 노동자 밀집도가 전국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곳이고 ‘세월호 참사’라는 우리 시대의 크나큰 아픔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도시다. 비록 무늬뿐인 직함이지만 안산노동대학 학장을 맡고 있어 자연스레 안산지역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에 관심을 갖고 있고 안면 있는 지역 활동가들도 여럿이다.
9년 전 세월호가 침몰한 날에도 안산 단원구에 있는 근로자종합복지관에서 노동자들과 행사를 진행 중이었고, 당연히 그날 행사 참여자 중에 세월호 희생자 관련자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작업장에 들어갈 때 휴대폰을 수거함에 넣고 들어가야 해서 아이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했어요.” “점심시간에 식당 텔레비전 뉴스에서 사고 소식을 보기는 했지만 회사 일은 다 끝내고 가야 하는 줄 알았어요.” “진도실내체육관에 갔더니 작업복 차림의 부모님들이 많더라고요. 옷 갈아입을 새도 없이 허겁지겁 내려온 거죠. 그 옷을 며칠 동안이나 못 갈아입었어요.” 그런 말들을 들으며 누가 가르쳐줄 것도 없이 세월호 사건은 노동자들의 도시에서 노동자들의 자녀들이 당한 참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안산 거리에서 세월호 공식 추모행사가 처음으로 열려 수만명이 모였던 날, 상가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난 작업복 차림의 청년이 꾸벅 인사를 하며 말했다. “에스제이엠(SJM)입니다.” 아…. 그 무렵 가장 혹심하게 탄압당했던 사업장이었다. “가장 혹심하게 탄압당했다”는 말로는 그 노동자들이 당한 고통을 만분의 일도 표현할 수 없다. 얼굴이 온통 피범벅으로 뒤덮여 눈 코 입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천인공노할 폭행을 자행한 용역회사 이사는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당당하게 말했다. “종북세력을 때려잡는다는 사명감으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70년 넘도록 분단 상황에 놓여 있는 한국에서만 할 수 있는 생각이다. 한국에서만 그런 것을 빌미로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것이 가능하다. 보수세력은 그렇게 마음대로 탄압할 수 있었던 시대가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 “천벌을 받을 사람들”에게는 그 정도의 폭행이 충분히 가능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쉽게 용납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노동운동 등 양심 세력을 ‘빨갱이’로 몰아 쉽게 제압하는 그런 시대가 다시 올 수도 있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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