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이주호’는 어디 갔나
[한겨레 프리즘]
[한겨레 프리즘] 진명선 | 노동·교육팀장
지난달 노동과 교육 분야 관할 팀장으로 발령받은 뒤 가장 반가웠던 인물은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었다. 2010년 3년차 기자 시절 첫 출입처에서 만난 취재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여년이 훌쩍 지나 ‘오비’(OB)로 재회한 그는 ‘그때 그 사람’이 맞나 싶다.
우선 사교육비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이명박 정부 ‘학교 만족 두배, 사교육비 절반’ 교육정책을 설계한 ‘그때 이주호’는 사교육비 절감에 진심이었다. 그가 ‘실세 차관’이던 2010년 3월 수능과 <교육방송>(EBS) 교재의 ‘체감 연계율’이 70%로 공식화됐다. 연계 정책은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됐지만 이비에스 교재 지문을 그대로 활용하는 식의 ‘체감 연계율’은 30% 수준에 그쳤다. 이비에스 교재가 교과서를 대체하고, 교실 교육을 황폐화했다는 지적과 별개로 연계율 ‘70%’는 즉각적인 사교육비 절감으로 이어졌다. 2009년 26만9천원이었던 일반고 1인당 사교육비는 2010년 26만5천원, 2011년 25만9천원으로 낮아졌다. 2012년엔 26만5천원으로 다시 올랐지만, 중학교 사교육비(27만6천원)보다 낮았다.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외고·과학고 등 특목고 입시에도 손을 댔고, 자기소개서와 면접으로 뽑는 자기주도학습전형을 도입해 수·과학경시대회 및 어학인증시험의 입시 반영을 어렵게 한 것도 그때였다.
10여년 만에 다시 만난 이주호는 그 시절 그가 아닌 것 같다. 윤석열 정부 1년차인 2022년 사교육비는 26조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학생 1인당 사교육비 월평균 52만원으로 역시 최고치를 경신했다. 본인이 장관으로 있던 2012년(총액 19조원, 1인당 23만6천원)에 견줘 크게 악화한 수치지만, 관련 자료가 공개된 지난달 8일 이후 한달이 넘도록 ‘사교육비 종합대책’ 발표 시점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지난 10일 교육부 정례브리핑에서는 “종합대책을 내는 대신 개별 대책을 발표하겠다”는 얘기까지 나와 ‘종합대책 기피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윤석열 정부의 첫번째 ‘저출생 대책’ 발표 때도 사교육비와 관련해서는 “경감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덜렁 한줄뿐이었다.
왜 그럴까. 그가 지금은 ‘실세’가 아니어서 그럴까. 이명박 정부 때 이주호는 내각의 ‘인싸’였다. 2008년 4월 발표된 학교자율화 조치는 0교시, 강제 야자, 우열반 등 한국 학교의 ‘마지노선’을 무너뜨렸는데, 이 일로 광우병 촛불시위 때 “미친 소”와 더불어 “미친 교육” 구호가 나왔다. 전교조는 물론 보수적 교육단체였던 교총까지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이던 그의 경질을 요구했다. 부정적이나마 그는 ‘중심’에 있었다.
반면 윤석열 정부에서 이주호는 존재감이 별로 없다. 세월호 9주기 기억식에 “교통 상황” 때문에 불참하고 “특별한 이유 없이” 추도사도 내지 않은 일로 모처럼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거기까지였다. 2008년 상황에 견주면 사실상 ‘무플’(댓글이 없는) 상태다.
‘실세 이주호’ 뒤에는 ‘사교육비 절반’이라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었다. 반면 윤 대통령은 역대 최대 사교육비 통계가 나온 날부터 18일 현재까지 사교육비 관련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노동개혁, 연금개혁과 더불어 3대 개혁과제로 교육개혁을 꼽았다는데, 맞나 싶다. 또 당시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사교육대책 티에프(TF)’까지 꾸릴 정도로 사교육비 부담 절감에 나름 ‘진심’이었다. 곽승준, 정두언 등 당에서 교육정책에 보조를 맞추던 ‘우군’들은 학원 교습시간을 자율화하라는 (사교육) 시장의 요구에 맞서 ‘밤 10시 이후 심야교습 제한 법제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엠비(MB) 정부 철학과 맞느냐”는 당내 반발에 “천만 학생과 학부모가 우리 편”이라고 맞서던 뚝심과 진심을 가진 이들이 지금 국민의힘에는 없다. ‘다시 만난 이주호’ 정체성의 핵심은 어쩌면 고독인지도 모르겠다.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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