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나도 응급실 못가”···수애는 6년을 ‘지워진 아이’로 살았다
2016년 6월25일, 한 아이가 태어났다. 몸무게가 2kg 채 안됐던 아이의 이름은 송수애. 엄마 뱃속에서 6개월 만에 나와 곧바로 인큐베이터로 들어갔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죠.”
지난 15일 경기 이천시 자택에서 만난 수애 아빠 송창순씨(49)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수애의 신생아 사진을 보여주며 연신 미소를 띠었다. 이제 일곱살이 된 수애가 냉장고에서 꺼낸 사과를 들고 송씨 곁으로 다가왔다. 지난달 초등학교에 입학한 수애는 아는 게 부쩍 늘었다. “사과는 애플. 선생님이 꽃이 열매가 되고, 씨가 나온대요. 근데 아빠, 이거 먹어도 돼요?”
수애네에 함박웃음이 번진 지는 1년이 채 안 됐다. 수애는 태어나서 6년 가까이 출생등록을 못했다. 송씨가 ‘비혼부’였기 때문이다. 송씨는 크게 다쳐도 응급실에 못갈까, 학교를 못 다니게 될까 마음 졸이며 딸을 키웠다. 그러다 2년간의 행정소송 끝에 수애의 주민등록번호를 겨우 얻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3일 혼인외 출생자의 신고는 ‘어머니’만 할 수 있도록 한 가족관계등록법 제46조 제2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2025년 5월31일까지 혼외 생부도 자녀의 출생등록을 할 수 있도록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하라고 했다. 다른 비혼부들도 별도 소송 없이 자녀의 출생등록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코로나19 백신 못 맞아 3년간 집에만…열 나도 응급실 못 가
송씨는 수애가 태어나고 며칠 후 주민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다. 수애의 생모가 이혼한 지 300일이 안 됐기 때문이다. 민법에 따르면 이혼 300일 이내 태어난 자녀의 친권은 생모와 전남편에게 있다. 생부인 송씨에게는 출생신고를 할 권한이 없었다. 생모는 수애가 3살 때 집을 나가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수애는 ‘지워진 아이’로 살아야 했다. 민간보험은커녕 건강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도 송씨의 지인을 통해 ‘알음알음’ 겨우 등록했고, 원비나 보육비 지원은 받지 못했다.
수애가 3살 때, 처음으로 고열 증세를 보였다. 송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상비약 먹이고, 열 식히려고 화장실 들어가 물 뿌리고 안아주고 밤새 그러니까 애가 지쳐서 자는 거예요. 열 좀 내려가니까 그제서야 방긋 웃고 좀 기어다니고.” 송씨는 응급실에 수애를 데려갈 수 없었다. 진료비가 비쌀뿐더러, 병원에서 신원이 없는 사람을 잘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날이 밝은 뒤에야 보건소에 데려가 열을 떨어뜨리는 주사를 맞힐 수 있었다.
수애를 진료해준 기관은 보건소와 집 인근 병원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송씨가 ‘아기수첩’을 들고 가 생부임을 증명하거나 주차관리원으로 일하며 알게 된 병원장에게 사정사정해 가능했다. 진료를 봐준 병원에서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다. 병원에서 처방받고 감기약을 타는 데까지 4~5만원씩 들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수애에게 특히 가혹했다. “정부에서 전화가 와요. 백신 맞으라고. ‘우리 아기 송수애 맞힐 수 있어요?’ 물어보면 ‘거기는 기록이 안 나오는데요’라면서 안된대요.” 마스크 물량 부족으로 2020년 3월부터 약 3달간 주민등록번호에 따른 마스크 부제를 실시할 때도 수애는 마스크를 살 수 없었다. 아이가 코로나19에 감염될까 두려웠던 송씨는 지난 3년간 수애와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했다. 외식 한번 한 적 없었다. 다행히 수애는 지금까지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다.
수애는 교육권도 누리지 못했다. 송씨는 아는 사람을 통해 수애를 어린이집에 겨우 등록했지만 보육료 지원을 못받아 월 60~70만원씩 내야 했다. 유치원은 경제사정에 따라 보내다 말다 했다. 수애가 학교 갈 나이가 다 돼가자 송씨는 교육청에 전화를 걸어 “내 아기도 학교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나 교육청은 “출생 신고가 안 돼 있어 못 간다”고 했다.
“출생등록은 아이의 ‘생존권’”
“‘내가 죽으면 아기 출생신고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경찰서 앞에 갖다 놓고 도망가면 주민등록번호가 나와요. 근데 범죄자가 되면 딸을 못 보고. 베이비박스 운영하시는 목사님을 찾았죠. 목사님이 김지환 ‘아빠의 품’ 대표님을 소개해줬고, 김 대표님이 행정소송을 하자고 설득했습니다.”
송씨는 비혼부인 자신도 딸의 출생등록을 할 수 있게 해달라며 낸 행정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송씨가 생모의 신상을 알 수 있다는 점을 기각 이유로 들었다. 비혼부의 출생신고권을 보장하는 ‘사랑이법’(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이 2015년 생겼지만, 이 법은 생부가 출생등록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모친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로 제한한다. 2심에서 송씨는 “생부가 생모의 이름을 모르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2심 재판부는 지난해 5월 ‘생모의 소재를 알 수 없는 경우 등에도 생부의 출생신고가 가능하다’고 판결을 뒤집었다.
송씨는 수애의 출생신고서를 써낸 2022년 6월23일, 온종일 울었다고 했다. 올해 수애는 집에서 100m 떨어진 학교에 입학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보육교사도 하루 한 시간씩 집에 방문해 수애를 돌본다. 송씨는 “무엇보다 아이의 꿈을 실현할 기회가 생겨 좋다. 교육받고, 사회에 진출할 수 있게 됐지 않냐”며 “관련법 개정 작업이 남기는 했지만 헌재 결정으로 저와 비슷한 처지의 다른 아빠들도 아이의 생명권을 지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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