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이프이스트-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최고 제품은 시장을 새로 만든다
아버지는 평생 집을 직접 두 번 지었다. 두 번째 지은 집이 완성되자 바로 이발소를 개업했다. 1966년이다. 우리집에서 백여 미터 앞에 있는 아세아시멘트 공장 준공을 앞두고서다. 개업하기 전에 ‘일성(一盛) 이발관’ 간판을 먼저 달았다. 간판을 단 이튿날 어머니가 잠을 깨워 일어나자 아버지는 이미 어둑한 새벽에 양복을 차려입고 기다렸다.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고 충북 진천에 갔다. 지팡이를 짚는 아버지는 물건을 가지고 가야 할 일이 있으면 동행에 들려 갔다. 그날은 내가 보자기에 싼 선물을 든 동행으로 따라갔다. 군청 옆 다방에 들어가 좀 기다리자 젊은이가 부리나케 들어와 바닥에 엎드려 아버지에게 큰절했다. 아버지가 양팔을 잡아 일으켜 자리에 앉히자 그는 의자 끝에 앉았다.
지금 이름은 잊었지만, 며칠 지나 진천에서 만났던 분이 그분보다 더 젊은 남자와 여성 두 분과 함께 집에 왔다. 이튿날 개업식을 했다. 이발용 의자 5개를 갖추고 이발사 세 명, 면도사 세 명, 머리 감겨주는 사람까지 직원이 7명인 대형 이발소였다. 꽤 넓은 이발소 안은 사람들이 가득 찼다. 하객들은 서서 떡을 먹고 술을 마셨다. 의자 셋에는 이발하는 성급한 사람도 있었다. 처음 보는 풍경이어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아버지가 소파에서 일어서자 모두 손뼉 쳤다.
아버지는 “그동안 고심 많이 했다. 작은 동네에 이미 이발소가 세 개나 있는데 또 문을 열어야 하느냐는 고민이었다. 당장 구내이발소를 열 형편이 못 되는 공장 측에서 요청도 있어 생고민을 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서 “사람의 첫인상은 머리에서 60%가 결정된다. 외지에서 온 공장 사람들의 고급 머리를 위해 진천에서 최고 이발사를 모셔왔다”며 인사시켰고 모인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아버지는 “서울서 기술을 배운 다른 이발사도 원주에서 모셔왔다”라고 했다. 같이 온 면도사들을 소개할 땐 모두 큰소리를 지르며 손뼉 쳤다. 아버지는 “우리는 최고 이발사와 면도사들이 고급이발을 하는 곳이니 적어도 2주에 한 번씩은 들러 머리를 단정하게 손질해달라”고 끝을 맺었다.
어머니가 바빴다. 남는 방 두 개에 남녀 직원들이 기거하면서 식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잠에서 깨면 집으로 연결된 뒷문을 열고 이발소로 갔다. 매일 이발과 면도와 세면까지 마친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아침 신문을 들추고 면도사가 가져온 커피를 마셨다. 이발소는 아버지 접견실이었다. 문 열면 그때부터 이발소는 앉을 자리 없이 북적댔다. 막내 면도사는 종일 커피 타는 일만 했다. 이전의 이발소와는 사뭇 달랐다.
개업하고 한참 지나 아버지는 고사성어 ‘갈택이어(竭澤而漁)’를 말씀하셨다.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 고기를 잡는다’는 뜻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온다. 진(晉)나라 문공(文公)이 초(楚)나라와 접전을 벌일 때 초나라군이 막강해 이길 방법이 없었다. 궁리 끝에 이옹(李雍)에게 방법을 묻자 그가 한 대답에서 나왔다. “못의 물을 모두 퍼내 물고기를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그 훗날에는 잡을 물고기가 없게 될 것이고[竭澤而漁 豈不獲得 而明年無魚], 산의 나무를 모두 불태워 짐승들을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뒷날에는 잡을 짐승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속임수를 써서 위기를 모면한다 해도 영원한 해결책이 아닌 이상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아버지는 “훗날을 생각하지 않는 방책은 장사의 도리가 아니다. 그러나 최고 제품은 시장을 새로 만든다. 먼저 있는 세 이발소가 있어야 우리 이발소가 빛난다. 씨를 말리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울로 이사할 때까지 아버지는 이발소를 계속 운영했다. 아버지 말씀대로 제천 읍내에 이발하러 나가던 공장 손님들을 모두 흡수했다. 그 세 이발소에 다니던 동네 사람도 여전히 그 집에 다녔다. 그렇게 함께 사는 마음은 ‘사회성’에서 싹튼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 서둘러 손주들에게도 꼭 가르쳐야 할 품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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