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고용세습’ 남은 기아… “단협 개정 좀 하자” 노조에 공문
기아가 장기근속한 직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내용을 담은 ‘고용세습’ 단체협약 조항을 개정하고자 노조에 공식 협조 공문을 보낸 것으로 18일 파악됐다.
고용노동부의 시정 요구에도 노조의 버티기로 시정이 이뤄지지 않아 결국 사법 절차 초읽기에 들어가자 사측에서 부랴부랴 나선 것이다.
18일 조선닷컴 취재에 따르면 기아 사측은 전날 노조에 ‘우선채용 관련 단체협약’ 제27조 제1항에 대한 개정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해당 조항은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 정년 퇴직자 및 장기근속자(25년 이상)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상 ‘고용 세습’을 명문화한 이 조항은 십수년 전부터 실행에 옮겨진 적 없는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지만 여전히 단협 상에 남아있다. 비슷한 조항이 있던 현대자동차 노사는 2019년 이를 삭제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는 해당 조항이 헌법에 명시된 평등권과 고용정책기본법의 취업 기회균등 보장을 침해했다며 지난해 8월 시정 명령을 내렸다. 100인 이상 사업장 1057곳의 단체협약을 전수조사한 결과 60곳이 대상이 됐다.
기업들은 관련 조항을 삭제하는 등 자율 시정에 나선 상황이다. 기아와 비슷한 시기에 고용부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은 LG유플러스와 현대위아 등 13곳이 노사 협의를 거쳐 단체협약을 개정하는 등 현재까지 54곳이 개선을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고용세습 조항이 있는 사업장 중 가장 규모가 큰 기아는 지난해 말 지방노동위원회의 시정명령 의결로 석 달여간 시정 기한이 주어졌지만, 그 기한인 지난 3일까지 단체협약을 개정하지 않았다.
기아를 제외한 나머지 사업장은 시정 명령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부 안양지청은 기아의 노사 관계자와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을 시정명령 불이행에 따른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최근 입건했다. 고용부는 특별사법경찰권을 행사해 수사 후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면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할 수 있다.
이에 기아 사측은 노조에 보낸 공문을 통해 “회사는 해당 조항의 개정 관련해 여러 차례 걸쳐 귀 노조(기아차 노조)에 법 위반 조항을 개정해 달라고 요구했음에도 현재까지 개정에 이르지 못했다”며 “언론사에서 당사를 고용세습 및 불공정 채용 사례 기업으로 지적하며 우선채용 조항 유지 및 노동부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연일 비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당 조항과 관련해) 형사 사건으로 입건돼 수사가 진행 중이며 형사처벌이 예견되는 상황”이라며 “고객과 국민의 부정적 시선이 노사 모두에게 부담될 수 있으므로, 즉시 단체협약 제27조 제1항(세습 조항)이 개정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한다”고 당부했다.
노조 측은 사측과 올해 교섭에서 우선채용 조항 개정을 논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기아 노사의 단체협약은 2년에 한 번 갱신하는데, 올해는 임금 협상을 진행하는 해이며, 단협 갱신은 내년에 이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사측은 단협 개정은 내년에야 할 수 있지만 올해라도 노사간의 협의체를 통해서 ‘우선고용 단체협약 폐지’에 대한 합의만 이끌어낸다면 합의에 따라 효력이 발휘된다는 입장이다.
기아 관계자는 “사측은 2014년부터 단체교섭 때마다 고용세습 조항 삭제를 요구했으며, 노조 측에 꾸준히 협조 공문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노조 측에서도 의지를 갖고 협조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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