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이복현의 말 … 구두개입과 시중은행 금리 [마켓톡톡]

한정연 기자 2023. 4. 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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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금리인하 압박하자
시중은행 과하게 금리 떨어뜨려
19개 은행 39개 예금상품 중
38개 금리 4.0% 밑도는 수준

여기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있다. 한국과 미국에선 공히 투자자들이 은행에 넣어왔던 '예금'이 머니마켓펀드(MMF)로 이동하고 있다. 이럴 경우 시중은행은 통상 예금이 더 이상 빠지지 않도록 금리를 끌어올린다. 실제로 미국 은행들은 스스로 금리인상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시중은행은 되레 금리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유가 뭘까. 답은 구두개입에서 찾을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 금리인하 효과 논쟁=한국은행이 지난 11일 2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하면서, 정작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할 시기에 그 효과가 실물경제에 긍정적으로 미칠지를 두고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일단 시중은행의 예금금리 수준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18일 현재 5대 은행인 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이미 기준금리보다 낮거나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전국 19개 은행의 예금상품 39개 중에서 1개 상품만이 우대금리를 모두 적용할 경우 연 4.00% 금리를 넘었다. 국민은행의 'KB스타 정기예금' 금리는 연 3.40%, 신한의 '쏠편한 정기예금' 금리는 연 3.37%로 기준금리를 밑돌았다. 은행은 정기예금,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데 1년 만기 은행채의 금리는 지난해 11월 5.02%에서 지난 14일 연 3.51%로 크게 떨어졌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를 두고 행정부 관료와 정치인들이 발언하는 일은 늘 있었다. 대체로 실물경제가 침체했을 때 금리 인하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준금리 인하의 효과는 먼저 은행들이 한국은행에서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기준금리 인하폭만큼 내리면 대출자금 조달비용이 내려가고, 그럼 대출금리가 하락한다. 기업과 가계는 이자 수익이 낮아진 만큼 예금을 줄이거나 대출을 받는 방식으로 투자와 소비에 나선다. 돈이 돈다는 말이다. 그런데 당국의 구두개입으로 시중은행 이자가 기준금리를 밑돈다면, 한국은행이 지금 기준금리를 낮춰도 돈이 돌지 않고, 경기가 개선되지 않는다.

구두개입이라는 말은 한국은행이 발간한 경제용어사전에도 표제어로 실리지 않은 말이다. 기획재정부의 온라인 시사경제용어사전에 따르면, 구두개입이란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환율시장에 개입하는 '스무딩 오퍼레이션(smoothing operation)'에서 시장에 직접 개입하기 전 구두로 개입 의지를 밝히는 것을 뜻한다. 미세조정(fine tunning)이라고도 한다.

외환시장 구두개입의 형식은 주로 금융당국이 '시장 안정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거나, '외환시장을 면밀하게 모니터링 하고 있다'는 등의 발언을 기자들에게 알리는 방식을 취하는 게 일반적이다.

■ 구두개입의 전제=외환시장이든 어디든 구두 개입이 가능하려면 말하는 사람(화자話者)이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시장에 개입해 통화의 가격을 움직일 수 있는 화자는 한정돼 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이번 정부에서는 그 역할을 윤석열 대통령, 이복현 금감원장이 맡고 있다. 시장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감원장. [사진=뉴시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13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은행 고금리로 인해 국민들 고통이 크다"며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고 금융계를 질타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4일 후인 2월 17일 은행의 영업행태가 약탈적이라면서 "실효적 경쟁이 존재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복현 원장은 3월 9일에는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대출금리 인하를 권고하는 게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결정권을 왜곡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개별 은행이 대출금리를 인하할 여력이 아직 있고, 통화량 등을 봤을 때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 발휘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3월 30일에는 영등포 우리은행 지점을 방문해 "5월 내지는 6월, 상반기가 지나기 전에 은행의 노력과 단기 자금시장 안정으로 인한 금리 하락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3월 31일 5대 금융지주 회장들을 만나 "시장금리 상승 등 비용상승 요인을 금융권에서 최대한 자체적으로 흡수해 차주들에게 전가되는 금리인상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이같은 구두개입은 당연한 것이라고 불화설에 선을 그었다. 문제라면 국내 은행들이 이 말을 너무나 빠르게 받아들이고, 실제로 금리를 기준금리 밑으로까지 내리면서 발생했다.

■ 구두개입 효과=다만, 우리가 이 지점에선 따져볼 게 있다. 한은 총재가 구두개입의 명분을 인정하든 말든 시장이 어떻게 움직였느냐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상황을 살펴보자. 현재 양국의 은행들에선 예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통상 시중은행은 금리를 끌어올려 예금을 확보하려 한다. 미국은 그런 방법을 쓰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되레 금리를 떨어뜨리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 중심엔 '구두개입'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8일 미국 경제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은행들이 마침내 예금금리 인상 압박을 받게 됐다'는 제목의 기사를 출고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미국 서부의 팩웨스트뱅코프 은행은 단기 양도성예금증서(CD)에 최대 5.5% 이자를 주고, 머천트뱅크오브인디애나는 CD 금리로 5.4%를 적용했다.

기사는 연방예금보호공사(FDIC) 자료를 인용해 3월 일반 저축계좌의 예금금리가 0.37%로 전년 동월 0.06%보다 크게 상승했다고 밝혔다. 인터넷은행의 3월 예금금리는 0.37%로 1년 전 0.06%보다 크게 올랐다. 미국 기준금리는 현재 4.75~5.00%다.

미국 은행들이 금리를 올리는 이유는 예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말 17조6600억 달러였던 미국 은행 전체의 예금 잔액은 3월 말 17조1900억 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 은행 위기로 한달 동안 무려 예금 4700억 달러가 줄었다. 이는 1973년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후 최대 규모의 감소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뉴시스]

영국 경제매체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예금 감소분 중에서 머니마켓펀드(MMF)로 이동한 자금 규모는 4400억 달러다. MMF는 환매조건부채권(RP), CD, 초단기 국채에 투자하는 단기 금융상품이다. 미국 은행들이 대출의 기반이 되는 예금을 잃으면서, 은행들의 3월 자금조달 비용은 1‧2월 평균보다 2.7배로 늘어났다.

한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3월 가계대출 잔액은 680조7661억원으로, 전월 대비 4조6845억원 줄면서 지난해 1월부터 15개월 연속 감소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MMF 규모는 2월 말 현재 211조원을 기록해 2006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200조원을 돌파했다. 법인들의 MMF 잔액이 특히 늘어나고 있다. 법인 MMF 자금은 지난해 말 140조원대에서, 올 1월 179조원, 2월 177조원으로 급등하더니 3월에는 무려 183조5000억원에 달했다. 국내 자금이 예금을 빠져나와 MMF로 유입됐다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국내 시중은행의 금리는 미국과 달리 '인하'에 맞춰졌다. 정책을 결정하는 화자들의 '구두개입'이 시중 금리의 인하를 부채질했다고 볼 수 있다.

■ 구두개입의 기술=문제는 이 구두개입이 얼마만큼의 긍정적인 효과를 내느냐다. 이 역시 미국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자신이 직접 지명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기준금리를 취임 6개월 만에 두차례 올리자 "연준이 미국 경제가 좋아질 만하면 기준금리를 올려서 달러 가치를 상승시키는데, 이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공격해 파장이 일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이후에도 중앙은행을 직접 겨냥해 금리를 떨어뜨리라고 압박했다.

미국 대통령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건 대공황 당시였던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연준을 재무부에서 독립시킨 이후 사실상 처음이었다. 미국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행정부와 중앙은행이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서다. 연준의 존재 의미는 통화정책을 독립적으로 집행해서 행정부가 인플레이션을 무릅쓰고 단기 고성장을 추구하려할 때 방어막을 자처하는 것이다.

구두개입은 결국 듣는 사람들의 심리를 조정하려는 행위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라디오 담화 '노변정담爐邊情談(fireside chat)'은 대통령이 난롯가에서 얘기를 나누는 것처럼 편하게 연설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루스벨트가 노변정담을 시작한 계기는 대공황 발발 4년 후에도 뱅크런이 재발할 기미가 보였기 때문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부실은행을 정리했으니 안심하고 은행에 돈을 맡기라고 부탁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70년대 오일쇼크로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하자 TV 연설에 나섰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물가는 오르는데 성장은 없는 상황으로 실업률과 소비자물가지수가 동시에 급등하는 것을 말한다.

지미 카터는 1977년 2월 따듯해 보이는 스웨터를 입고 TV에 등장해서 밤에 집 온도를 낮추고 스웨터를 입자고 제안했고, 자동차 속도를 줄여서 석유를 아낄 것을 부탁했다. 카터 대통령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정책은 정반대였다. 카터는 공격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폴 볼커를 선임했고, 미국 기준금리는 21.5%까지 치솟았다.

[사진=뉴시스]

■ 구두개입과 블랙아웃=가장 최근에 있었던 유명한 구두개입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으로부터 나왔다. 파월 의장은 2021년 3월 "인플레이션 급등은 일시적"이라며 양적 긴축과 거리를 두는 발언을 했지만, 9개월 후인 같은해 12월 "인플레이션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것을 암시했다.

파월 의장의 판단은 결론적으로 오판이었지만, 경제 상황이 유동적인 만큼 중앙은행장의 말은 수시로 바뀔 수밖에 없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마크 카니 총재는 2017년 7월 일주일 사이에 기준금리 인상이 시기상조라던 발언을 뒤집고 "통화완화정책 일부를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영국 노동당의 팻 맥파든 의원은 이런 카니 총재를 가리켜 "어느 날은 뜨겁고, 어느 날은 차가워서 여자친구를 헷갈리게 만드는 믿을 수 없는 남자친구"라고 비난했다.

로이터는 지난 12일 '중앙은행을 위한 조언: 적게 말하고 더 많이 웃어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앙은행장 입장에서 구두개입은 금리 결정보다 영향력이 있을 수 있다"며 "하지만 관료들이 회의 전에 공개발언을 자제하는 블랙아웃 기간을 가져야 중앙은행장의 연설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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