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호소한 전세사기 '경매 중지'... 못 했나, 안 했나 [Q&A]
정부, 신·수협 등에 경매 중지 요청
"공공 채권 매입은 전례 없어 불가"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정작 피해자들의 정책 체감도는 낮다. 정부 대책이 주로 피해 예방에 치우쳐 있다 보니 가장 중요한 '전세보증금 반환'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은 18일 "전세사기 매물의 경매 절차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정부 정책의 허점과 현재 국회 등에서 거론되는 정책 아이디어의 실현 가능성을 문답(Q&A) 형식으로 따져봤다.
Q. 피해자가 요구하는 '경매 중지'만큼은 해 줄 수 있지 않나.
A. 피해자가 경매 중지를 요구하는 이유는 당장 전셋값을 돌려받지 못하는 만큼 일단 기존 집에 살며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정부도 대통령이 경매 중지 조치를 신속히 시행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후속 조치에 나선 상황이다.
다만 경매 중지는 말처럼 쉽지 않다. 민간 금융기관이 요청해 정부 산하기관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매입한 대출채권은 경매 기일을 늦출 수 있다. 정부는 캠코가 보유 중인 인천 미추홀구 소재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대해선 경매를 보류한 상황이다.
하지만 은행처럼 민간 기관이 선순위 채권자인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 강제로 경매를 중지시키면 채권자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현재 신협, 수협, 캐피털, 채권추심업체가 주로 경매 주택에 선순위 채권자로 이름을 올린 걸로 정부는 보고 있다. 이에 정부는 이들 금융업체에 비상 상황임을 고려해 일정 기간(6개월~1년) 경매 신청을 유예해 달라고 요청할 계획인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에선 금융당국이 요청하면 금융사도 이를 따를 것으로 내다본다.
피해자가 경매로 살던 전셋집을 낙찰받을 수 있게 경락잔금대출을 확대하는 것도 장벽이 있다. 빌라, 오피스텔은 여러 차례 유찰돼 낙찰가격이 시세의 60~70% 수준인데, 이는 전셋값보다 낮은 수준이다. 집값보다 기존 전세대출이 높아 결국 담보가 없는 상황과 똑같다. 정부는 신용대출 방식으로 대출을 확대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탓에 큰 실효가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Q. 전세세사기 피해자는 왜 정부 대책을 체감 못 하나.
A. 정부는 지난해 9월과 올해 2월 전세사기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이후에도 보완 대책을 수시로 내놨다. 다만 전세사기앱 출시, 불량 집주인 명단 공개를 비롯한 전세사기 예방 대책에 견줘 피해자 지원 대책은 미진하다는 지적이 많다. 피해자 지원 대책은 저리의 긴급자금 대출, 최우선변제금 상향이 골자인데, 정작 이는 떼인 전세금을 돌려받는 데 당장 도움이 되진 않기 때문이다.
Q. 어떤 허점이 있나.
A. 정부 조치로 법이 개정돼 올해 2월부터 전셋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임차인의 최우선변제 대상 보증금과 우선변제액 한도가 기존보다 각각 1,500만 원, 500만 원 상향됐다. 서울 기준 보증금 1억6,000만 원 이하로 계약한 세입자는 최대 5,500만 원까지 돌려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전세 계약이 법이 개정된 2월 이전에 끝난 세입자는 바뀐 규정을 적용받지 못한다. 현행법상 기존 계약까지 소급 적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1월에 전세 만기였던 전세보증금이 1억6,000만 원이었다면 아예 우선변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더구나 집에 근저당이 잡혀 있으면 근저당권 날짜 기준으로 법이 적용된다. 17일 인천 '미추홀 전세사기꾼'에게 전세금을 떼인 뒤 죽음으로 호소한 A씨는 2019년 보증금 7,200만 원에 전세를 계약하고 2021년 9월 임대인 요구로 보증금을 9,000만 원으로 올려줬다. 이 아파트는 2017년 근저당이 설정됐다. 당시 기준으로는 보증금 8,000만 원 이하여야 최대 2,300만 원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데, 이를 모른 A씨가 보증금을 올려주면서 최우선변제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최근 2, 3년간 전셋값이 많이 오른 데다 최우선변제 기준을 조금이라도 초과해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 보니 정책 체감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Q. 국회에서 거론되는, 공공이 일괄 채권을 회수해 선보상하고 후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은 어떤가.
A. 정부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이는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국가가 모든 사인 간 빚을 떠안는 방식으로 전례가 없는 데다 한 번 허용하면 앞으로 보이스피싱을 비롯해 모든 사인 간 빚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가 되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피해자가 최대한 피해를 복구할 수 있도록 모든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다만 국가가 나서 사인 간 채무를 모두 떠안으라는 조치는 수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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