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수만건·조단위 피해 우려···정부 "우선매수권 부여 추진"
부산·대구·광주 등서도 피해 접수
무주택 간주 등 기존대책 도움 안돼
65개 시민·사회단체 대책위 구성
'깡통전세 매입 특별법' 제정 촉구
원희룡"시간벌어 입법 사항 논의"
‘인천 건축왕’으로부터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의 극단적 선택이 잇따르면서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다. 그동안 내놓은 대책이 피해자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에 그쳤던 데다 올 하반기가 되면 피해자 수가 지금보다 훨씬 늘어나 수만 명에 달하고 피해 규모도 조 단위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다. 정부가 그동안 피해자들이 요구했던 피해 주택에 대한 경매 중지 및 피해 임차인에 대한 우선 매수권 부여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피해자 구제를 위한 범정부 차원의 특단의 대책을 하루빨리 추가로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65개 시민·사회단체 등이 모여 출범한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1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세사기, 깡통 전세 문제는 사회적 재난”이라며 정부와 국회에 깡통 전세 공공 매입 및 피해 구제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다. 또 △전세 가격(보증금) 규제를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전세대출·보증보험 관리 감독 강화 △경·공매 중지와 퇴거 중단 등도 촉구했다. 대책위는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전세사기 문제 해결을 위한 범시민 대책위원회가 출범한 것은 그동안 정부의 대책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데다 피해자가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건축왕으로부터 전세사기를 당한 인천 미추홀구 피해자 가구가 약 2700세대, 피해 규모만 2300억 원으로 추정되는데 인천 외 다른 곳에서도 전세사기 피해 접수 건수가 지속해서 늘고 있고 만기가 돌아오는 전세사기 주택까지 고려하면 올 하반기에 피해 가구 및 규모가 수만 건, 조 단위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주호 참여연대 사회경제팀장은 “미추홀구 외에 서울 강서구 ‘빌라왕’에게 피해를 본 가구가 약 1140가구이며 수도권뿐 아니라 부산·광양·광주·대구·포항에서도 전세사기 피해가 접수되고 있어 이를 합하면 1만 가구가 넘을 수 있다”며 “전세 보증금이 평균 1억 원이라고 가정한다면 피해 규모가 최대 조 단위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올 2월부터 몇 차례 발표된 정부의 전세사기 대책도 피해자를 구제하는 데는 턱없이 미흡했다는 평가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피해 빌라를 낙찰받을 시 무주택자 요건 유지 정책은 당장 집을 못 구하는 피해자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이 다른 집으로 이사할 때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버팀목대출(연 1~2%금리)을 이용하도록 했지만 소득·자산 기준 등을 충족해야 해 요건이 까다롭고 이미 전세대출을 받은 상황에서 또 대출을 받기 어렵다는 게 피해자들의 목소리다.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대항력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주택에 거주해야 하는 경우 저리로 대환대출을 실행한다는 정책도 발표했지만 5월부터 시작돼 당장 집에서 나가야 하는 피해자들은 이용해보지도 못했다.
이에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기존 대책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인식하에 시민단체와 대책위를 꾸리고 정부에 강력한 대책을 촉구할 방침이다. 우선 전세사기 피해 전수조사, 피해 주택에 대한 경·공매 중지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피해자가 경매에서 주택을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한 부여 및 경락 대금 대출 지원 등도 위원회의 요구 사항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제물류산업대전 개막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경매를 유예하고 어느 정도 시간을 확보한 다음 피해자 보호 장치를 갖도록 (대통령이) 지시했다”며 “피해 임차인에게 우선 매수권 부여는 입법사항인데 그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더 나아가 정부가 임차인이 가진 보증금 반환 채권을 우선 매수해 피해자들을 구제하고 매수한 보증금 반환 채권을 기초로 해당 주택을 매입해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책위 측은 “과거 정부에서도 부도 임대주택 특별법을 제정하고 부도 임대주택 매입 후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해 기존 세입자들을 구제한 바 있다”며 “깡통 전세 주택의 공공 매입과 피해 구제를 핵심으로 하는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이런 요구 사항이 빠른 시간 내에 수용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피해 가구에 대한 경매 중지는 대부분 선순위 채권자인 민간은행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은행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정부가 은행권에 협조를 요청하겠지만 이를 받아들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담보권 실행은 은행들 자체 권리인 만큼 연합회 차원에서 (경매) 연기 등 액션을 취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일단 당국에서 각 은행의 현황을 파악하는 수순을 우선 거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모든 피해자가 경매 중단을 원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도 문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대책은 여러 부처와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를 거쳐야 도출될 수 있는 사항”이라며 “그럼에도 정부가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대책을 빨리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동훈 기자 hooni@sedaily.com노해철 기자 sun@sedaily.com정유민 기자 ymjeong@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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