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경제문맹이라는 재앙
토요일 낮 12시 대치동 학원가, 편의점이 아이들로 북적인다. 가게 앞 테이블에서는 초중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컵라면에 삼각김밥을 먹고 있다. 이미 익숙한 듯 엄마가 못 먹게 하는 라면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기쁨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유기농 채소에 한우, 쌀까지 좋은 것만 먹이며 곱게 키운 아이들일 텐데 싶어 마음이 짠했다.
편의점에서 결제하는 방식도 유심히 봤다. 현금을 내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엄카'(엄마가 미리 충전해준 카드)를 꺼냈고, 결제 금액을 체크하기는커녕 영수증을 받는 경우도 드물었다.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계산할 때와 무심히 카드로 긁을 때의 소비심리가 얼마나 다른지, 돈을 써본 사람들은 안다. 하지만 밥 먹을 시간도 아껴가며 공부하는 아이에게 현금을 주고, 올바른 지출 습관을 들이라는 부모는 없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씀씀이가 어른과 다르지 않다. 햄버거를 사 먹고 후식으로 밀크티를 사 먹고, 친구들과 쇼핑하고 놀러가면 몇만 원은 훌쩍이다. 대부분 얼마나 쓴다는 자각 없이 엄카를 긁으면서 초중고 시절을 보낸다. 대학생이 되면 따로 용돈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기도 하지만, 소비지출 습관과 투자 감각은 여전히 초등 고학년 수준이다.
이렇게 성장한 20대가 재테크에 입문하면서 투자 시장에서도 기현상이 목격된다. 예를 들면 300만원 신용대출을 받아서 오늘 오르는 주식이나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운이 좋아 30만원을 벌면 300만원은 갚고 50만원으로 오마카세를 먹거나 사고 싶은 것을 사는 식이다. 이런 불나방 투자의 끝은 대개 '신용불량'이다. 돈을 숫자로만 접하다 보니 '게임머니'처럼 생각하는 행태가 확산되고 있어 심히 우려스럽다.
정규 교육과정 중 경제 관련 필수교육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용돈기입장 쓰기' 2시간짜리 수업이 전부다. 상황이 이런데도 고교 선택과목이던 경제가 폐지 위기라고 한다. 이제 경제문맹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대치동에 금융 공부방이라도 차려야 할 판이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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