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국민 심성 피폐하게 하는 현수막
정치권이 정당 정책을 알리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현수막 게시 제한을 스스로 없애자 온 거리가 원색적인 정치 구호가 적힌 현수막으로 도배됐다. 정쟁이 극한으로 치닫는 총선이 아직 1년이나 남았는데도 이렇다. 총선이 임박하면 그야말로 현수막 공화국이 될 판이다. 정당 현수막이 우후죽순 내걸리면서 시민들도 극심한 불편을 겪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 접수된 현수막 관련 민원은 지난해 말 6415건이었지만 연말부터 연초까지 3개월간 1만4197건으로 2배 넘게 늘었다.
정당 현수막이 급증한 것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11일 시행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개정안은 정치적 사안과 관련한 정당 현수막은 사전 신고나 허가 없이 아무 곳에나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소상공인 현수막에는 엄격한 게시 제한을 두면서 정당이 내거는 현수막만은 예외로 빼둔 것인데 이는 정치권 집단 이기주의를 여실히 보여주는 입법 사례다. 정당 정책을 국민들에게 잘 알리겠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제 내걸린 현수막 내용을 보면 상대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비난이 대부분이다. 현수막이 주관적인 구호에 그치다 보니 지지하는 정당이 내건 현수막을 보면서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 수 있겠지만 반대의 경우 불쾌해지기 십상이다. 정당 현수막이 온 거리를 싸움판으로 만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인이 현수막 줄에 목이 걸려 다치거나 현수막이 잔뜩 걸려 쓰러진 가로등에 맞는 사고도 발생했다. 썩지도 않고 태우면 발암물질을 내뿜는 폐현수막을 양산해 세계적 추세인 탄소중립에 역행하는 건 덤이다. 여야는 이 같은 부작용이 논의 단계에서 이미 예견됐음에도 법안을 통과시켰다. 부작용이 속출하면서 정치권에선 정당 현수막 제한을 다시 두자는 재입법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고치려는 의지가 있는 건 다행이지만 시행 넉 달 만에 법안 내용을 손바닥 뒤집듯이 되돌리는 것은 명백한 입법 실패다. 정치권이 자초한 현수막 대란을 반면교사 삼아 법을 만들 땐 한층 신중해져야 한다.
[홍혜진 경제부 honghong@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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