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덕칼럼] 전경련의 마지막 기회

손현덕 기자(ubsohn@mk.co.kr) 2023. 4. 1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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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탱크 되라는 주문
현실은 그리 한가하지 않다
자유와 시장가치 지키는
戰士가 돼야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국가적 이벤트의 중심으로 진입하고 있다. 지난 문재인 정부 땐 존재감조차 없던 전경련. 윤석열 정부 들어 위상이 확연히 달라졌다.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윤 대통령과 친분을 쌓은 김병준 전경련 회장 대행이 전면에 등장하면서부터다.

지난 3월 17일 전경련은 윤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맞춰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와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했다. 외교적 잡음에 가려 의미가 퇴색해서 그렇지 사실 역사적인 자리였다. 전경련을 박차고 나간, 그래서 지금은 더 이상 회원이 아닌 삼성, SK, 현대차, LG 등 4대 그룹 총수가 모두 참석했다.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 대통령이 직접 행사장을 찾아 경제인들을 격려했다. 이것도 14년 전인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 처음이다. 마치 짜고 치는 듯 손발이 딱딱 맞아떨어진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1주일 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에서도 경제협력의 키는 전경련이 잡는다. 국빈방문에 참석할 경제사절단을 구성하고 현지 비즈니스포럼을 주관하며 업무협약 체결식에도 동행한다.

격세지감도 이런 격세지감이 있을까 싶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이후 전경련에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문재인 정부 때는 거의 모든 공식행사와 일정에서 배제됐다. 조직은 풍비박산 나고 재계를 대변하는 목소리는 고사하고 숨소리조차 못 낸 죄인이었다. 안 그래도 태생 자체가 '정경유착'인데 그 원죄를 씻기는커녕 5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모양 그 꼴인 경제단체였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말로만 재계의 맏형이었다.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이끈 공(功)은 오히려 스스로를 찌르는 검(劍)이 됐고 차곡차곡 쌓아 올린 성공의 신화는 오히려 소중하게 가꿔왔던 가치를 오염시키는 독(毒)이 됐다. 자유는 방종으로, 시장은 무질서로, 그리고 자본은 탐욕으로 용어의 정의(定義)가 도치되는 기막히고도 참담한 현실. 누가 누구를 탓하겠는가? 공격의 주역은 소위 진보좌파 세력이지만 그걸 눈뜨고 당한 보수우파의 무능이 더 한심하다. 대한민국의 보수를 지키는 두 축은 안보와 시장. 안보보수도 신통치 않은 마당에 나머지 축인 시장보수마저 무기력하게 쓰러졌다. 대한민국 물적토대를 이룬 주역들을 쫓아내고 주인도 아닌 사람들이 주인 노릇을 한 결과였다. 자유시장경제를 지키는 울타리가 돼야 할 조직이 정부와 재계의 교신자 역할을 하면서 경제 생태계를 망가뜨렸다.

스스로를 수술대에 세울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기업인이 아닌 정치인에게 사령탑을 맡긴 전경련. 겉으론 화려하게 부활한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정경유착의 오명을 다시 한번 뒤집어쓸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위기가 움트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번이 전경련의 마지막 기회다. 이번에 무너지면 조직 해체 이외엔 답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김 대행이 정치인이긴 하지만 국가가 기업에 올라타는 걸 배격하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입만 열면 자유와 시장을 말한다. 일본 경제인과의 행사 때도 한국과 일본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치를 공유하는 동북아시아에서의 유일한 파트너"라고 표현한 그다. 그래서 6개월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 김 대행에게 주어진 미션은 분명하다. 오롯이 자유시장경제 가치를 지키는 단체로 탈바꿈시키는 일. 정권 바뀐다고 얼굴색 바꿀 필요가 없는 조직으로 재건하는 일.

그러려면 전경련 스스로 전사(戰士)가 돼야 한다. 한가하게 싱크탱크 운운할 때가 아니다. 그러기엔 현실이 엄혹하다. 자유와 시장을 부수려는 세력들이 도처에서 활개 치는 세상. 그들과 한바탕 전쟁을 벌여야 할 판이다. 지금 전경련은 경제강국의 신화를 쓴 대한민국 산업화의 주역들에게 큰 빚을 졌다. 빚을 갚을 때가 됐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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